[자유 게시판] <명화이야기> "키스", 클림트와 에밀리 플뢰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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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8-09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
짧은 인생이 아쉬워 예술이라는 영원 속에 삶의 흔적을 남겨놓는 것일까? 어쩌면 예술은 허무의 몸부림일지도 모른다. 빈 분리파, 구스타프 클림트가 좌장이고, 그 옆에 에곤실레. 오스카 코코슈카 등이 자리했다. 썩은 사과가 풍기는 퇴폐와 관능의 향내가 비엔나 거리를 가득 매우던 벨 에포크 시절, 클림트는 빈의 카사노바였다. 그는 평생 결혼하지 않았지만 사생아를 14명이나 남겼다. 그의 화실은 예술의 성소였지만 사랑의 장소이기도 했다. 빈의 아름다운 여자들은 클림트의 그림에 반했고, 기꺼이 그와 육체적 사랑에 몸을 던졌다.
빈의 바람둥이 클림트에게도 구원의 여인이 있었다. 비엔나 최고 부띠끄를 운영했던 지적인 여자 에밀리 플뢰게. 둘은 깊이 사랑했지만 육체의 선을 넘지 않았다. 플라토닉한 사랑의 관계. 살아생전 클림트는 플뢰게를 향해 400 통이 넘는 연서를 날렸다. 그리고 플뢰게를 모델로 하는 그림 네 장을 남겼다. 키스의 연인은 바로 클림트와 에밀리 플뢰게다.
사랑을 결혼을 통해 완성하려 했다면 둘의 사랑은 파탄났을지도 모른다. 섹스를 했다면 아마도 이들의 사랑은 죽음 이후에까지 이어지지도 않았을 터이다. 플뢰게는 클림트가 죽은 이후 어떤 남자와도 교제하지 않았다.
보통 여자라면 이런 어정쩡한 관계를 진작에 정리했을 텐데 이 여인은 희한하게도 난봉꾼 클림트의 모든 것을 이해하고 죽은 뒤에도 뒷일을 마무리했다. 그녀는 클림트의 명예를 지키는 데도 남다른 ‘공헌’을 했다. 클림트 사후 불명예스러운 기록이나 증거들을 모조리 없애버렸다. 덕분에 마리 짐머만을 제외한 클림트의 여인들은 이름조차도 희미한 상태로 지금까지 베일에 싸여 있다. 클림트는 육체적 욕망을 다른 여인을 통해 채우면서도 마음은 언제나 플뢰게에게 가 있었다. 클림트의 뮤즈 에밀리 플뢰게는 명화 <키스>를 통해 불멸을 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