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 게시판] 잡다한 역사이야기 19편 - 세계를 두고 벌인 그레이트 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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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eesa224입니다. 오늘은 세계를 두고 두 강대국이 벌였던 그레이트 게임이라 불리우는 시기를 이야기 해보려고 합니다. 얼핏보면 우리나라와 관련 없어보이기도 하지만 실제로는 우리나라 근대사에도 어마어마한 영향을 끼친 사건이라 이 일련의 사건들이 어떻게 우리나라에까지 영향을 끼쳤는지를 이야기 해보고자 합니다.
세계를 두고 경쟁을 벌인 대영제국 Vs 러시아제국
위 두 강대국은 19세기가 시작되던 1800년대 초반은 끈끈한 동맹관계였습니다. 특히 당시 유럽을 지배하려던 야욕을 지닌 나폴레옹을 몰락시키는데 이 두 국가가 아주 지대한 공헌을 했죠.
그러게 왜 러시아 쳐들어가서..... 그런데 이번에 후손들이 러시아에서 월드컵 우승을 했으니 한이 좀 풀렸을까요? ㅎㅎ
그후 나폴레옹 이후 시기에 이 두나라는 알게 모르게 적대적 관계로 바뀌기 시작합니다. 일단 프랑스는 제쳐두고서라도 영국은 전세계적으로 광범위한 식민지를 거느린 제국이었기에 돈도 많았고, 그 돈을 바탕으로 전 세계의 바다를 지배하고 있었죠. 러시아는 어마어마한 영토,거기에 걸맞는 인구로 유럽대륙을 넘어 바다로 나아가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조금씩 조금씩 바다로 나갈 준비를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조짐을 본 영국이 가만히 있지 않았죠.
바다로 나갈 출구를 찾아라
러시아는 이제 바다로 나갈 생각을 하고 바다로 나갈 항구를 찾습니다. 당시 러시아는 근대러시아를 만들었다는 표트르 대제때부터 바다로 나갈 생각을 하고 아예 수도를 바다에 인접한 상트페테르부르크를 건설했죠.
러시아가 바다로 나갈 출구로 선택한 곳
근데 위 지도를 자세히 보시면 알겠지만 바로 나가면 세계 1위의 해양국가 영국의 앞마당으로 바로나가게 됩니다. 그리고 영국은 혹시라도 러시아가 이리로 나올지 몰라서 북유럽국가들에게 지원을 해서 자기들 편으로 만들었지요.
당시 핀란드는 러시아 땅이었고, 노르웨이는 스웨덴땅이었습니다.
특히 스웨덴의 경우는 러시아와는 몇번 전쟁을 했을정도로 사이가 안좋았기때문에 러시아 견제를 위해서라도 영국과 꼭 붙어있었습니다. 그래서 만일 러시아가 이곳으로 나가고자했어도, 영국이 함대를 동원해 해협봉쇄를 하거나 아니면 아예 전력을 다해 러시아 함대를 분쇄해버릴수도 있었죠. 러시아도 그걸 잘알았기에 이쪽 루트를 포기 합니다.
그 다음 러시아가 찾은 길은 바로 요즘도 말이 많은 흑해지방입니다. 당시 흑해지방은 현 터키 오스만투르크의 땅이었는데, 러시아가 이 오스만투르크와 전쟁을 벌이며 야금야금 땅을 뺏고 있었죠.
무려 13번이나 크고작은 전쟁을 벌였습니다.
처음에는 몇번 승리와 패배를 반복했습니다만 어느 순간부터는 러시아군이 압도적으로 오스만투르크를 박살내기 시작합니다. 마침내 1783년에는 크림반도를 확보하지요. 이때만해도 러시아는 이쪽에 큰 신경을 쓰지는 안쓰고 요새화하는데 만족했습니다만 1800년대 들어서부터 이쪽을 발전시켜나가며 흑해를 거쳐 다르다넬스해협을 지나 지중해로 나가겠다는 계획을 세웁니다. 그러자 발등에 불이 떨어진건 오스만투크르였습니다. 적대국이 자기 수도앞을 마음대로 지나가겠다고 하는거니까요.
수도 코앞으로 주적의 함대가 왔다갔다 하는 형국이었습니다.
그러자 오스만투르크는 결사적으로 이 계획을 막으려 했지만 이미 나폴레옹도 꺾은 러시아군을 막아낼수 없었습니다. 계속되는 패전으로 이제 러시아가 실제로 이 해협을 통해 나오는건 시간문제 같아보였습니다.
드디어 맞붙은 크림전쟁
여기서 영국은 처음으로 직접 개입을 선택합니다. 만일 러시아가 흑해를 거쳐 지중해로 나오면 애지중지하고 있던 이집트와 막 기획중이던 수에즈운하 계획에도 차질이 생길수 있었으니까요. 그래서 프랑스를 끌여들여서 함대와 병력을 이끌고 흑해로 진입합니다.
전쟁은 이미 세계 최강대국이었던 영국이 승리하지요. 그리고 영국은 크림반도의 요새들을 함락시킨뒤에 잿더미로 만들어버립니다. 다시는 이곳을 통해 지중해로 나오지 못하는 조치를 취한겁니다.
승리한 영국도 많은 피해를 입었는데 대부분 전염병으로 인한 손실이었습니다. 이때 활약한게 나이팅 게일입니다.
근성의 러시아
러시아는 유럽쪽 루트가 두군데나 막히자 새로운 루트를 개척하기로 합니다. 바로 중앙아시아 루트입니다.
이 초원지대를 지나 바다로 나가고자했지요. 그래서 이 중앙아시아의 유목민들을 하나하나 굴복시켜나가며 점차 러시아의 영향력을 넓혀갑니다. 이곳에서 막아서는 국가가 있었으니 당연히 영국이었습니다. 보시면 아시겠지만, 저기서 아프가니스탄만 넘어가면 바로 당시 영국이 공들여 식민지화한 인도였으니, 러시아가 인도로 곧장온다는 건 상상만해도 끔찍한 이야기였지요. 그리고 당시 아프가니스탄과 영국은 사이가 좋지 않았기때문에 러시아가 아프가니스탄에 접근해 지원해주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영국은 아프가니스탄으로 처들어가게됩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영국의 실패로 끝납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큰피해를 입고 물러나게되지요. 그러나 러시아 역시 이곳을 통해 바다로 나아가는데는 실패합니다. 이곳의 자연환경이 워낙 험했기때문이죠.
이런 산맥을 어떻게 지나가야할까요? ㅎㅎ
마침내 성공한 러시아
그러나 러시아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마지막 루트인 극동에 총력을 다하지요. 크림전쟁의 패배로 좌절했지만 마침 벌어진 극동의 전쟁인 아편전쟁에서 개입하여 중재자를 자처하며 1860년 연해주를 청나라로부터 뺏어오는데 성공합니다.
연해주와 만주는 청나라가 아주 신성시하던 곳이었는데, 청나라가 혼란에 빠진 틈을 타서 러시아가 낼름해버립니다.
그리고 러시아는 이 연해주에 블라디보스톡을 세우고 이곳을 발판삼아 만주와 아시아쪽에 영향력을 강화하기 시작합니다.
그러자 벙찐건 영국이었습니다. 영국은 원래 중국을 상대로 어거지 트집까지 잡아가며 아편전쟁을 일으켰는데, 비록 알토란 같은 홍콩을 얻어냈지만, 러시아가 얻어낸 영토에 비하면 말그대로 한줌에 지나지 않았지요.
지금 보면 영국이 100배 이득같습니다만 ㅎㅎ
그리하여 아시아에서도 러시아와 영국의 신경전이 시작됩니다.
조선의 선택
한편이 일련의 사건은 조선에도 큰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당시 조선은 겉으로는 청나라에 복속된 상황이었지만, 마음속에서는 청나라에대한 반감이 장난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워낙 강력한 나라였기대문에 복수는 마음속으로만 할수 있었죠.
그런데 그렇게 강력했던 나라가 새로나타난 세력들에 의해 박살나는것을 옆에서 목격합니다. 이때 조선의 반응은 통쾌함 반에 두려움 반이었습니다. 오랑캐 청나라가 박살나는건 좋은데 무지막지한 서양의 힘에 공포를 느꼈던 것이죠. 이때 조선이 택한 방법은 바로 쇄국이었습니다. 그리하여 대원군의 쇄국정책으로 한동안 조선의 문은 굳게 닫혀있었죠.
흥선대원군의 사진입니다.
그러나 세계사적인 흐름에 조선도 더이상 문을닫고 있을수 없었습니다. 결국 대원군이 실각하고 실권을 잡은 고종은 나라의 문을 반강제적으로 열게 되고 많은 국가들과 수교를 맺게 됩니다. 그리하여 당시 근대화된 그나마 비슷한 정서를 가진 나라 일본의 영향을 많이 받게 되고, 일본의 지원을 받은 세력이 갑신정변을 일으킵니다. 그리고 이를 청나라가 진압하게 되지요.
그러자 상황은 더더욱 꼬이게 됩니다. 청나라의 영향력이 더더욱 쎄진것이죠. 그래서 고종이 선택한 새로운 세력은 바로 러시아였습니다. 러시아를 통해서 청나라를 견제하고자 했던것이죠.
이 소식은 곧 영국으로 전해집니다. 당시 영국은 조선에는 큰관심이 없었습니다. 가장 큰 시장 중국을 어떻게 해볼까, 막 안정화시킨 인도는 또 어떻게 다스려볼까 하던 시기였기때문이죠. 그러나 러시아의 남하는 더 이상 두고볼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리하여 영국은 1885년 포트해밀턴이라 명명된 섬을 점령합니다. 우리나라명으로는 거문도였지요.
제주도와 여수 중간쯤에 위치한 섬입니다.
영국은 이곳을 점령하여 태평양으로 나올려는 러시아를 견제하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불행인지 다행인지 러시아는 더이상 남하하지 않았고, 조선에도 큰 관심이 없었죠. 만주를 어떻게 해볼까에만 큰관심이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2년여의 협상 끝에 러시아는 조선을 보호국화 시키지 않는다라는 조건으로 영국이 거문도에서 물러나게됩니다.
그후에...
그리고 시간은 흘러 마침내 청일 전쟁이 일어나 일본이 승리하고, 그 승리한 일본을 삼국간섭이라고 해서-러시아, 독일, 프랑스-일본을 압박하여 일본에게 굴욕을 주게되죠. 그리고 이러한 일련의 사건을 본 조선은 더더욱 러시아쪽으로 기울어지게 됩니다. 특히 일본이 명성황후를 살해한 사건 이후 조선은 아예 러시아쪽에 붙게됩니다.
이때 큰 활약을 했던게 친러파 이완용이었습니다. 그후 친미를 거쳐서 친일파가 되죠.
특히 1896년에 일어난 아관파천이라 불리우는 사건은 조선이 러시아의 영향력아래 들어갔다고 전세계에 선포하는 어마어마한 사건이 됩니다. 아관파천은 고종이 러시아대사관으로 가서 그곳에서 정무를 보던 사건을 말합니다. 이 사건을 본 영국은 마침내 이곳에서도 러시아를 막아야겠다는 결심을 굳히게 됩니다. 북해에서는 스웨덴을, 흑해에서는 오스만투르크를 파트너로 선택했던것처럼, 영국은 동아시아에서 일본을 파트너로 선택합니다.
그리하여 1901년 영일동맹이 체결되었고, 그후 러일전쟁이 일어나자 영국은 일본을 지원해줍니다. 러시아함대의 수에즈운하통과를 거부하여 아프리카를 뺑돌게 만들고, 일본의 전쟁채권을 사들여 재정적지원도 해주죠. 그리고 러일 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마침내 조선을 집어삼키게 됩니다.
이 그레이트 게임은 20세기 초반 러시아보다도 더 강력한 제국이었던 독일제국의 등장과 함께 끝이납니다. 이 일련의 사건들은 우리나라에도 어마어마한 영향을 끼쳤고, 그때 몇번의 선택으로 인하여 결과적으로는 일본의 식민지가 되는 결말로 이어졌습니다. 지금이야 다 지나간 일이라 보였지만, 만일 그때 당시 국제정세에 좀 밝은 사람이 있어서, 러시아보다는 영국을 선택했다면 어떤 결과가 일어났을까요? 영국은 조선에 관심이 없었으니, 영국이 지원을 거부했을수도 있고, 러시아 남하를 직접 막겠다고, 러시아와 영국이 조선을 전장으로 한판 붙었을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영국령 조선이 되어 우리는 다같이 영국음식을 먹으며 영어를 썼을지도 모르는 일이지요. 당시 조선은 워낙 낙후되어있었고 국제정세에 너무 어두었고, 잘못한 선택만 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역사적 교훈을 잊지말고 앞으로는 국제정세를 잘 읽을수 있는 능력을 키웠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요즘도 한반도를 둘러싸고 요동치는 국제정세가 심상치 않으니 두번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