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 게시판] 잡다한 역사 이야기 19편 - 트집을 잡는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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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eesa224입니다. 오늘은 잡다한 역사이야기 19편입니다. 지금은 그래도 사상의 자유가 보장되어있고, 발언의 자유, 표현의 자유가 있는 시대지만 역사적으로는 이런 자유는 거의 수천년간 없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조심 또 조심하곤 했지요. 그래도 작정하고 달려들면 어떻게든 걸려들었습니다. 특히 표의문자인 한자 문화권에서는 이렇게 걸고 넘어져서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사사정 사건

중국의 마지막 왕조 청나라는 수십만명의 만주족이 수억명의 한족을 지배하는 구조였습니다. 그러다보니 청나라 황제들은 언제나 한족들의 반란을 걱정해야했지요. 그래서 청나라 황제들은 대체적으로 중국 황제치고는 유능한편에 속했습니다. 그래서 스스로 공부하고 한족들을 비교적 적절히 통치하는데 성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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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도 중국의 역대황제중 최고로 손꼽히는 강희제입니다.

이 강희제 시절 청나라는 전성기를 맞이하는데요. 이때는 비교적 한족들을 유화적으로 다스렸습니다. 물론 그 배경에는 청나라 초기의 대 학살이 있었지요. 그리고 강희제 시절 드디어 남명의 잔재도 다 청산을 했습니다. 그러나 이는 겉으로만 보여졌고, 한족들 마음속에는 아직 청나라를 받아들이기 힘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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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희제의 아들이자 워커홀릭 황제였던 옹정제

그래서 강희제 다음 황제였던 옹정제는 강희제와는 다른 방식으로 한족들을 다스렸습니다. 겉으로는 온화한척 했지만, 가끔 말도 안되는 억지를 부려가며 한족들에게 본보기를 보여주었죠. 그중에 제가봐도 좀 말도 안되는 사건이 하나 있으니 사사정 사건입니다.

사사정은 옹정제시절에 살았던 문인으로 1726년에 강서성의 과거시험을 감독하던 관리였습니다. 그는 과거의 시제로 사서삼경중 하나인 시경에 있는 유민소지(維民所止)라는 문제를 출제하였습니다 뜻은 詩云, 邦畿千里, 維民所止(시운, 방기천리, 유민소지)즉N'시경에 이르되 나라의 도읍 사방 천리는 백성들이 멈추어 사는곳이니라' 별다른 문제 될거 없어보이는 평범한 문구였죠. 그런데 옹정제는 이 문구를 트집잡아 사사정이 반역을 꾀한다는 죄로 잡아들여서 일가족을 몰살시켜버립니다. 도대체 무슨 죄목이었을까요?

당시 중국은 각 황제별로 연호라는것을 쓰고 있었습니다. 강희, 옹정 이런게 연호지요. 근데 옹정은 雍正이렇게 씁니다. 그런데 維民所止에서 유와 지를 자세히 보세요. 옹정에서 윗부수들을 날린거 같아보이지 않습니까? 雍正과 維止 비교해보시면 위에 뭔가 없죠? 옹정제는 바로 이부분에 주목했습니다. 사사정이 維民所止라는 시제를 낸것은 만주족 옹정의 목을 베겠다는 뜻이 담겨있는 불순한 의도로 보았습니다. 그렇게 트집잡힌 사사정은 잡혀들어가 옥사했고 가족들은 다 죽임을 당했습니다. 뭐 나중에 사사정의 가택을 수색해보니 청나라를 비판하는 문장들이 다수 나왔다고는 합니다만 과연 사사정이 진짜 옹정제의 목을 날려버릴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요? ㅋ

호코지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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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시대 일본을 통일한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무역을 독점하여 어마어마한 돈을 벌어들입니다. 이때쯤 조선과 일본의 상황이 역전되었다고 보고 있습니다. 이 돈을 이용해 잘먹고 잘살았으면 문제가 없었지만 뜬금없이 임진왜란을 일으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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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일본의 패배로 끝났지만요.

이 임진왜란을 도대체 왜 일으켰나 논란이 분분하지만 한가지 확실한것은 괜한 전쟁으로 도요토미 히데요시 스스로가 몰락했다는 것입니다. 가신들 대부분의 충성심도 잃어버리고 특히 에도(현 도쿄)에 있는 최대의 라이벌 도쿠가와 이에야스에게 큰 기회를 준 셈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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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는 기다림의 아이콘 도쿠가와 이에야스

거기다 히데요시의 후사 히데요리는 당시 너무 어려서 이 도쿠가와를 상대할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다른 유력한 사람들이 일본의 패권을 두고 대 전투가 벌어졌는데 세키가하라 전투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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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전투는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승리로 끝났고, 일본은 이제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손에 들어간것과 마찬가지였습니다. 하지만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여기서 또 한번 아직은 어렸던 히데요리를 끼고, 조금 더 기다렸다가 마침내 에도 막부를 창설해서 일본의 1인자로 우뚝 섭니다. 그리고 자신의 본거지 에도를 일본 최대의 도시로 만들기 시작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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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일본 최대크기의 성이었던 오사카성

그러나 도요토미 가문은 갑작스런 상황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도요토미 히데요리는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손녀사위였기때문에, 그냥 만족하고 살았으면 뭐 동화속 이야기마냥 평화롭게 이야기가 끝났을수도 있었겠지만, 한순간에 2인자도 아닌 3~4인자까지 떨어진 도요토미 히데요리는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남겨준 오사카성과 어마어마한 재산을 믿고, 도쿠가와 이에야스 몰래 계획을 짜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오히려 초조해진건 도쿠가와 이에야스쪽이었습니다. 당시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70세의 고령 히데요리는 20대, 거기에 도쿠가와의 아들들은 영 능력이 부족했기에 더 걱정이었죠. 그래서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자신이 죽기전에 이 도요토미 가문을 완전히 정리하기로 마음먹습니다.

일단 도요토미의 재산을 없앨 방법을 모색하다가 한가지 꾀를 냅니다. 바로 호코지(方広寺-방광사)의 재건을 넌지시 권유하죠. 이 호코지는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만든 절로 도요토미 가문 사찰과도 같은 곳이었죠. 그런데 1년만에 지진으로 무너진 뒤에 다시 재건하지 못한채 남겨져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절을 복원하라고 하니, 도요토미 히데요리는 이 절을 화려하게 재건하여 가문의 부흥을 노리고자 합니다. 물론 이는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도요토미 히데요리의 부를 줄이려고 낸 방법이었습니다. 그런데 히데요리는 이 꾀에 제대로 넘어가 어마어마한 돈을 들여서 이 절을 재건합니다. 그리고 5년간의 공사끝에 완성시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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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성된 호코지, 이것도 낙뢰로 불에타서 나중에 또 재건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재건의 하이라이트 범종이 문제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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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종에 문구를 새겨넣었는데 이게 문제가됩니다. 이건 후대 사람들이 칠해놓은거라고 해요.

범종에 좋은 문구를 써넣었는데,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이 문구를 트집잡습니다. 어떤 부분이었냐하면요. 國家安康(국가안강) 君臣豊樂(군신풍락). 해석하자면 국가가 편안하고, 군주와 신하가 풍요롭고 즐겁게 지낸다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도쿠가와가 도대체 어디서 트집을 잡은걸까요? ㅋ

일단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한자로 쓰면 德川家康입니다. 家康이 이름인데, 國家安康을 해석하기를 家康사이에 安자를 집어넣은 의도는 이에야스를 반으로 쪼개버리고(...)또한 도요토미는 한자로쓰면 豊臣인데 君臣豊樂은 즉 君豊臣樂 도요토미가 즐겁게 지낸다라고 해석해 버린것입니다.

당연히 히데요리는 극구 부인하지만 도쿠가와는 이미 준비를 끝마친 상태였습니다. 결국 오사카 성 전투가 벌어졌고, 도요토미가문은 멸문당해버립니다. 그럼 이어마무시한 뜻이 담긴 범종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위에 사진처럼 온전히 남아있습니다. 즉 도쿠가와가 제대로 트집을 잡았을뿐 문구는 좋은 문구인게 맞았죠.


이렇듯 옛날에는 온갖 트집을 잡아 전쟁이 일어나기도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탄압을 받기도 했습니다. 요즘 이렇게 자유롭게 글을 쓰다보면, 옛날이었으면 누군가가 내 글도 이렇게 트집을 잡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생각하게 됩니다. 저도 온갖 다양한 트집을 잡혀서 감옥에 갇히지 않을까 생각이 드니, 자유라는게 참 소중하고 고맙다는 생각이 듭니다. 거기에 이렇게 한글이 아닌 다양하게 해석가능한 한자였더면 더 심했겠죠? 자유롭고 평화로운 요즘 세상이 다시한번 고맙게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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