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 게시판] 잡다한 역사이야기 1편 - 제갈공명의 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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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eesa224입니다. 오늘은 제가 관심가지는 분야인 역사에 관해서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매번 잡다한 상식가지고 해봤는데요. 상식과 역사는 조금 다른 분야 같아서 아예 새롭게 시리즈를 만들어 연재해보려고 합니다.
제갈공명의 전략
제갈량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게 KOEI 사의 삼국지 시리즈 일러스트죠.
삼국지를 읽어보시지 않으셨더라도 제갈량 아니 제갈공명이라는 이름은 한번쯤 들어보셨을 겁니다. 삼국지의 초반부 주인공이 유비라면 후반부 주인공은 이 제갈량이죠. 후반부의 제갈량은 현 사천지방에 자리잡은 촉나라를 위해 고군분투하다가 끝내 대업을 이루지 못하고 죽고마는데요. 그런데 왜 제갈량은 기반이 없던 유비에게 촉, 지금의 사천지방을 추천했을까요?
이렇게만 보면 촉이 제일 작아보입니다만....
험한 산맥 너머에는
사천지방은 중국과는 진령산맥이라는 어마어마한 산맥으로 단절되어있습니다. 이곳을 건너 중국지방으로 나가려면 잔도라는 절벽사이에 길을 통해 나갈수 밖에없지요.
진령산맥의 흔한 모습
그리고 그 사이를 이어주는 절벽 사이 잔도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산맥너머에는 상상치도 못할정도의 비옥한 평야지대가 존재합니다. 그리고 고대의 평야는 많은 식량 그리고 많은 인구, 그에 따른 강력한 국력의 기반이었습니다.
산맥 너머 드넓은 평야가 존재합니다.
그리고 제갈공명은 중국역사를 잘 알고 있었고, 앞선 역사의 사례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유비에게 이 사천지방을 자신있게 추천해준것이었습니다.
Case. 1 천하를 통일한 진나라
중국을 최초로 통일했던 진나라는 언제나 다른 6개국의 국력을 압도하는 강력한 나라였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진나라의 국력을 뒷받침해주는게 바로 이 사천지방이었습니다.
진나라의 영토, 한중, 촉, 파가 보이십니까?
진나라는 중원으로 나가는 관중도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진나라는 제갈공명의 촉나라와는 다르게 또다른 비옥한 지방이자 중원으로 나가는 교두보인 관중지방도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이곳에 수도를 두고 다른 국가들과 일진일퇴를 거듭했습니다. 다른 국가들은 국가기반인 영토가 전쟁터가 되어 황폐화 되는동안 진나라의 사천지방은 아무도 건드릴수 없었고, 그렇게 진나라는 다른 국가를 압도하고 중국을 통일할수 있었습니다.
Case.2 한나라를 세운 유방
초한지의 주인공이자 한나라를 세운 유방
진나라가 후에 몰락하자, 곧 중국은 유방과 항우가 패권을 두고 싸우게 되는데요. 한때 천하를 통일했던 진나라지방을 유방이 먼저 선점하게 됩니다.
유방의 부하중에는 소하라고 아주 유능한 인물이 하나 있었는데, 진나라 수도 함양을 점령한 유방군이 보물과 비단등을 노리며 약탈할때 소하는 잽싸게 관청을 뒤져서 진나라의 지도와 공문서들을 먼저 접수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진나라 국력의 기반이었던 사천지방과 관중지방을 유방의 지배아래에 두는데 성공합니다. 그렇게 유방은 항우와의 결전을 위해 전선으로 나갔고, 소하는 옛 진나라 지방을 안정화시켜서 유방에게 끊임없이 보급을 해주게됩니다. 유방은 항우와 싸우면 언제나 패배했지만, 소하는 계속해서 병력과 식량 무기를 보내주었고, 끝끝내 유방은 항우를 이기게됩니다. 유방은 소하의 이 공로를 잊지 않았고, 논공행상때 소하의 공을 1등으로 치게 됩니다. 이렇게 사천지방의 저력은 또 한번의 천하 통일에 큰 밑거름이 됩니다.
Case. 3 후한을 세운 광무제.
한편 한나라는 유방 사후 수백년뒤에 왕망이라는 사람에 의해 잠깐 멸망합니다. 왕망은 신나라라는 나라를 새로 세웠지만 왕망이 죽자마자 망해버리고, 곧 지방군벌들이 서로 왕을 지칭하며 대혼란의 시기가 찾아옵니다.
이 혼란을 잠재운게 바로 광무제 유수입니다.
이 광무제 유수는 유비의 먼 조상이기도 하지요. 광무제는 위의 사례들과는 반대로 사천지방을 제외한 나머지 모든 지방을 점령합니다. 당시 사천지방에는 공손술이라는 군벌이 지배하고 있었는데, 광무제의 능력 자체가 워낙뛰어나기도 했지만, 관중이라는 교두보 없이 고립된 사천은 다른 지방을 모두 차지한 광무제의 힘에 비하면 보잘것 없는 곳이었습니다. 광무제는 손쉽게 공손술을 격파했고, 삼국지의 무대가 되는 후한을 건국하게 됩니다.
역사의 사례를 보면.....
제갈공명은 아마 위의 세가지 사례를 충분히 검토했을 겁니다. 사천지방과 관중지방을 동시에 지배하면 천하를 통일할수 있고, 반대로 사천지방만 지배할경우 고립되어 멸망할수도 있다는 사실을 말이죠. 그리고 제갈공명은 새롭게 전략을 짜게됩니다. 관중지방은 이미 위나라가 공고하게 지배하고 있었으니, 관중지방 대신 형주와 사천을 토대로 위나라를 공격하려 합니다.
이렇게 말이죠.
그러나 오나라의 공격으로 촉나라는 형주를 잃어버렸고, 최악의 상황인 사천지방에 고립되어버립니다. 제갈량은 마지막으로 관중을 얻기위해 북벌을 단행했습니다만, 이미 관중과 사천지방이 합쳐지면 어떤 결과를 낳는지 잘 알고 있던 위나라는 아주 철저하게 방어를 했고, 그렇게 제갈공명의 북벌은 실패로 끝났고, 촉나라도 결국은 위나라에게 멸망하게 되지요.
제갈공명이 유비에게 알려주었던 전략은 역사를 통해 검증된 충분히 합리적인 전략이었습니다. 사천지방의 저력은 굉장했고, 형주만 잘지켜냈다면 역사가 어떻게 바뀌었을지, 아니면 형주를 잃어버렸어도, 북벌이 성공해서 관중까지 점령했다면 진나라, 한나라가 그랬듯이 제갈공명이 삼국지의 최후의 승자가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진나라, 한나라의 사례가 너무 강렬했기 때문에 위나라 역시 사력을 다해 관중을 지켰고, 결국 제갈공명의 전략은 실패로 끝나버립니다. 그후 관중지방은 소빙하기를 거쳐 황폐화 되었고, 사천지방의 생산량도, 중국의 강북, 강남이 개발됨에 따라 더 이상 그렇게 강력하지는 않게 됩니다. 사천지방은 그후 산맥 너머 촌동네가 되어버리지요.
만일 제갈공명의 전략이 성공했다면, 사천지방을 기반으로했던 진나라와 한나라의 사례처럼 다시금 천하를 통일할수 있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