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 게시판] 빛은 어둠을 이기다

1879년 12월 31일 빛이 어둠을 이기다

1879년 12월 31일 미국 뉴저지 주에 있던 토머스 엘바 에디슨의 멘로파크 연구소 근처에는 수천 명의 사람들이 몰려들었습니다. 이 사람들을 실어 나르기 위해 특별 열차까지 운행될 정도였지요. 그들은 그들 앞에 나타날 대단한 구경꺼리를 상상하며 가슴 설레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우선 기다린 것은 어둠이었습니다. 그러나 어둠 속에서도 사람들의 얼굴은 빛났습니다. 에디슨이 어둠을 물리칠 전구를 발명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1천개가 넘는 특허를 지닌 이 ‘발명왕’이자 ‘멘로파크의 마술사’가 또 무슨 조화를 부릴 것인지 호기심들이 그득했지요.

마침내 에디슨의 신호에 따라 멘로파크 거리에 설치된 전구가 환하게 밝혀진 순간 수천 명의 인파는 환호성을 내지릅니다. 백열등 불빛은 그을음도 없고 바람에 흔들리지도 않고 재가 날리지도 않았지만 그 어느 불보다 환하게 어둠을 무찔렀지요. 아마 멘로파크에 모여든 사람들은 잘 모르기는 하지만 그들 자신이 역사의 현장에 서 있음을 어슴푸레 느꼈을 겁니다. 해가 저문 뒤에는 별 수 없이 어둠의 지배를 받아야 했던 인류가 밤을 낮삼아 그 활동 시간을 연장할 수 있음을 입증하던 순간에 함께 하고 있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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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에디슨은 백열등 자체를 발명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백열등 자체는 이미 수십년 전에 인류 앞에 등장해 있었지요. 하지만 실용화가 어려웠습니다. 에디슨 역시 프랜시스 업튼의 도움을 받아 백금 필라멘트가 든 전구를 내놓은 바 있죠. 그러나 백금으로 필라멘트를 만든다는 것은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일이었지요. 백금이 얼마나 귀한 건데.

에디슨의 위대함은 여기서 발휘됩니다. 사실 에디슨의 천재성은 창의성이라기보다는 집요함에 더 무게를 둬야 할 겁니다. 그는 필라멘트 재료를 찾기 위해 금속, 자기 머리카락을 비롯한 동물의 털, 식물 섬유 등 1만여 종의 재료를 실험에 동원했고 마침내 최적의 필라멘트 재료인 대나무를 찾아 냅니다. 2천 4백여 번의 실험에 실패 끝에 성공을 한 그는 이렇게 얘기했다고 하죠. “누구에게나 2천4백번의 기회는 있다.” 미국 특허청에서 그의 특허 신청을 두고 한때 반려할 만큼, 그리고 법정 소송에 휘말릴 만큼 백열 전구는 그 혼자의 능력으로 이룬 업적은 못되었지만, 결국 백열전구는 에디슨의 발명품으로 남습니다.

문제는 이런 일이 한 두 번에 그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그의 조수가 증언한대로 에디슨이라는 이름은 그 개인의 이름이라기보다는 그와 함께 작업하고 그를 도와 일했던 많은 이들의 땀과 지혜가 함께 빚은 것이었지요. 기실 에디슨은 발명가라기보다 발명회사 사장이었고 발명왕이 아닌 발명가들의 왕으로 군림하려 들기도 했습니다. 그에게 거역하거나 튀어 보이는 과학자들에 대해 에디슨이 보여 준 태도는 지극히 ‘미국적’입니다. 그 대표적인 케이스가 또 다른 천재 과학자 니콜라 테슬라라는 사람에 대한 행동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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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슬라는 에디슨의 회사의 연구원이었습니다. 그는 에디슨이 내건 상금을 타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 끝에 전기 발전기의 성능을 획기적으로 향상시키지만 돈이 아까워진 에디슨은 ‘농담도 못하냐?’는 식으로 웃어 넘깁니다. 테슬라는 이에 반발하여 사표를 내던지고 라이벌 전기회사로 옮겨 교류발전기와 송전시스템을 개발하게 되는데, 에디슨은 이 테슬라를 물먹이기 위해 발명왕의 포스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개백정 노릇을 하게 됩니다.

고압의 고류 발전기로 개와 고양이를 태워 죽이는 공개 실험을 하면서 “교류는 위험하다.”는 인식을 심으려 한 거지요. 심지어 테슬라의 특허를 사들여서 그의 발명품 목록에 하나를 더 추가하게 됩니다. 사형수가 앉을 ‘전기의자’죠. 하지만 테슬라는 에디슨과는 달리 “천재는 99퍼센트의 영감과 1%의 노력으로 이루어진다”는 말이 어울릴 정도의 천재였습니다. 시카고 박람회에서 고주파 교류 전력이 그의 몸을 통과하여 전구를 켜게 만드는 것을 관중들 앞에서 실연함으로써 교류 전기의 안전성을 증명한 것은 그 만 가지 천재성 중의 하나일 뿐이죠.

테슬라라는 천재 과학자와의 알력 등으로 에디슨이 은근히 욕을 먹고 있고 일종의 탐욕스런 자본가의 전형으로 비판하는 시각도 있는 것으로 압니다. 특히 테슬라가 개인의 기술이 인류를 위해 보다 폭넓게 쓰여지고, “가진 자들의 폭력이 가난한 자들에게 굴욕을 주는 일이 없는” 세상을 꿈꾸었다는 점에서 그를 못잡아먹어 안달한 에디슨이 좀 더 악당으로 비쳐지기도 하겠지요. 하지만 역사라는 걸 선악의 기준으로, 정의와 불의의 잣대로, ‘아(我)와 비아(非我)의 투쟁’의 시각으로 바라보는 건 매우 위험할 것 같습니다. 테슬라에 대한 패악질 때문에 에디슨이 인류 역사에 미친 영향을 부인하는 것은 어리석음의 반열에 든다고 봐야겠죠.

역사는 때로 게걸스런 잡식성 동물 같아서 모든 것을 먹어 치우고 그 속에서 발전을 위한 자양분을 만들어 냅니다. 그리고 대단한 구두쇠라서 부단한 낙과(落果)의 아픔을 베풀고서야 열매 하나를 줄까 말까 합니다. 1879년 12월 31일 한 해가 저물던 밤 멘로파크의 밤거리를 밝혔던 전구들은 에디슨 이전의 많은 이들의 실패와 “1퍼센트의 영감과 99퍼센트의 노력”으로 퍼질러 앉아 매진했던 에디슨 (그는 사실 머리가 좋은 인물이 아니었다지요. 테슬라와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의 뚝심이 빚어낸 역사 속의 빛이었습니다. 물론 그 빛이 에디슨만 비추고 있는 현실에는 좀 비판이 가해져야 하겠습니다만.

영화 레미제라블이 화제를 모았던 적이 있습니다. 영화를 보고 온 친구가 마리우스가 가담한 혁명이 무슨 혁명이냐고 묻더군요. 프랑스 대혁명은 아닌 거 같고, 그 뒤의 그 몇월 혁명이냐 하면서 가물가물한 고등학교 세계사적 지식을 더듬더라고요. 당연히 아니지요. 역사에 남은 혁명은 그나마 성공한 혁명들입니다.

영화 속에서 마리우스와 앙졸라가 일으킨 ‘혁명’은 손에 꼽지도 못하는 소소하고 보잘것없는, 빈발했던 소요 가운데 하나라고 보는 게 옳겠습니다. 하지만 프랑스 대혁명 이전에도 그런 봉기는 셀 수 없이 있었고, 그 뒤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우리가 기억하는 굵직굵직한 사건들 앞과 뒤에는 처참한 실패와 좌절의 비명과 한숨들이 조약돌들같이 지천으로 깔려 있게 마련입니다. 하지만 결국 그 모든 것은 다가올 역사의 작지만 의미 있는 디딤돌이 되는 것이구요.

올해 겨울 유난히 춥고 어둡습니다. 이런 날일수록 많은 이들이 불을 밝히려고 노력하겠지만 그럴수록 아픔도 실패도 많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모든 실천과 열정들이 결국 대낮같은 빛으로 뭉쳐지는 날이 올 겁니다. 오기를 바랍니다. 1879년 12월 31일처럼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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