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 게시판] 고려에서 이어진 베트남 왕가

딸에게 들려주는 역사 이야기
우리가 된 이방인 2 고려에서 이어진 베트남 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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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사> 충혜왕세가(忠惠王世家) 기사(1330년 윤7월)를 보면 중통 원년, 쿠빌라이는 안남(베트남)에 이런 조서를 전한다. “본국 풍속을 하나같이 옛 제도대로 할 것이며, 꼭 바꿀 필요는 없다. 고려는 최근 사신을 보내 (풍속을 바꾸지 않게 해달라고) 청하기에 조서를 내린 바 있다. 모두 이에 의거해서 하라(박희병, <조선 후기 지식인과 베트남>).” 이런 쿠빌라이의 회유를 듣고서 당시 베트남 정부는 “고려가 무슨 나라고 어떻게 했다는 거냐?” 하며 정보망을 가동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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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나먼 베트남이지만 의외로 우리와는 인연이 많은 나라였다. 이후 중국의 수도에서 우리 조상들은 여러 차례 베트남 사신과 마주하게 돼. 양국 사신 모두 한자에 능숙하고 한시(漢詩) 등 중국 문화에 통달했던 만큼 말 한마디 통하지 않고도 꽤 깊은 교류를 나눌 수 있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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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도 잘 아는 <동문선>의 서거정, ‘오성과 한음’의 오성 이항복 등은 중국에 가서 베트남 사신을 만나 많은 기록을 남겼지. 그중에서도 <지봉유설>을 쓴 이수광의 베트남 경험은 상당히 인상적이다. 그는 1597년 정유재란을 맞아 명나라에 도움을 청하는 사신으로 갔다가 베트남의 사신 풍극관(馮克寬)을 만나게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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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넷 나이의 젊은 이수광이었지만 그 재능은 칠십 넘은 베트남 사신 풍극관에게도 놀라워 보였나 봐. 그는 이수광에게 ‘대수필(大手筆)’이라 극찬하며 베트남 특산물을 한 아름 안겼지. 무려 50여 일 동안 이수광과 풍극관은 필담과 시를 나누며 우정을 쌓았는데 풍극관은 그가 가진 시집에 서문을 써달라고 조르기도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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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과의 전쟁이 끝난 뒤, 이수광은 일본군에 끌려갔다가 일본 배의 선원이 돼 베트남을 방문했다는 조완벽이라는 사람을 만난다. 그는 놀랍게도 베트남에서의 이수광 ‘명성’에 대해 이야기해주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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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일본 상선을 타고 베트남에 갔을 때 베트남 관리가 잔치를 베풀어주었는데 ‘당신은 조선 사람이니 당연히 이수광을 알겠지?’ 하고 묻는 겁니다. 내가 어릴 때 일본의 포로가 돼서 잘 모른다고 하니 베트남 사람들 전부가 말도 안 된다고 놀랍디다. ‘어떻게 이수광을 몰라!’ 하면서 말입니다. 그러면서 나리가 읊으셨다는 시들을 보여주었습니다. 나리의 시를 베트남 유생들은 달달 외우고 있다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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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베트남은 우리 조상들처럼 한자를 쓰고 한시를 읊고 유교를 숭상했던, 중국의 강력한 영향을 받은 나라였다. 베트남이 처음 중국 세력권에 들어간 것은 B.C. 111년, 팽창 일로의 정책을 펴던 한나라 무제(武帝)의 군대가 베트남 북부 지역을 장악하고 7군을 설치하면서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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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은 한나라 무제가 점령한 뒤 무려 천 년이 흐른 서기 938년에야 독립을 이루게 돼. 그 후로도 중국의 압박과 내부 권력투쟁으로 혼란을 겪다가 리궁윈(李公蘊)이라는 이가 새 왕조를 개창하면서 안정을 찾으니 이 사람이 리타이또(李太祖)야. 리타이또는 나라 이름을 대월(大越:다이비엣)이라 하고 ‘탕롱(昇龍)’을 새로운 왕조의 수도로 정하는데, 이곳이 바로 오늘날 베트남의 수도 하노이야. 그래서 오늘날 하노이 시내의 호안끼엠 호수에 리타이또의 동상이 서 있는 이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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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 씨 왕조는 이후 200년간 번영한 베트남 최초의 장수 왕조로서 베트남의 기틀을 다졌단다. 대외적으로는 송나라의 침략을 물리쳤고 베트남 역사상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중국을 ‘침공’하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어. 리 씨 왕조 시대의 영웅 리트엉끼엣(李常傑)은 송나라와의 전쟁 때 유명한 노래 하나를 퍼뜨리는데 오늘날 베트남 사람들도 이를 일종의 베트남 독립선언문처럼 여긴다고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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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쪽 나라에는 남쪽의 황제가 산다고(南國山河南帝居) 하늘의 책에도 분명히 쓰여 있는데(裁然定分在天書) 어찌하여 역노는 이 땅을 침범하는가(如何逆虜來侵犯) 너희는 참담한 패배를 피할 수 없다(汝等行着取敗虛)(오정환, <베트남 -중국 천년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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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리 씨 왕조도 참담하게 몰락한단다. 새 왕조를 연 쩐 씨(陳氏)는 전 왕족이었던 리 씨들을 깡그리 멸족시킨다. 수백 년 뒤 조선의 이씨 왕조가 고려 왕씨를 대학살했듯 말이야. 이 와중에 베트남의 리 씨 왕족 가운데 한 명이 대탈주를 감행하여 먼 훗날 조완벽이 베트남에 왔던 바닷길을 거슬러 헤매다가 고국으로부터 3600㎞ 떨어진 낯선 땅에 이르게 된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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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의 황해도 옹진의 화산(花山) 땅이었고 베트남 왕족의 이름은 이용상(李龍祥)이야. 화산에 정착한 이용상은 몽골군이 침입하자 “토성을 쌓아 백성들과 함께 다섯 달 동안 버티며 싸웠다. 몽골 장수가 화친의 선물이라며 황금 상자 안에 자객을 숨겨 보내는 ‘트로이 목마’ 작전을 썼을 때도 이를 간파하고 상자 안에 끓는 물을 부어 자객을 처리한 뒤 되돌려 보냈다(박기현, <우리 역사를 바꾼 귀화 성씨>).” 이 공을 인정하여 고려 고종은 그를 화산군(花山君)에 봉하고 일대에 식읍을 내렸다고 해. 베트남의 왕족 ‘리롱뜨엉’은 화산 이씨의 시조 이용상으로 역사에 남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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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화산 이씨들이 베트남을 방문했을 때 베트남에서는 도므어이 당 서기장 이하 고관대작들이 총출동해서 국빈급으로 영접했지. 그들 보기에 화산 이씨들은 수도 하노이를 건설했고, 천 년 동안 베트남을 지배했던 중국 국경을 유린하며 베트남의 용맹을 떨쳤으며, 베트남이 왜 중국으로부터 독립해야 하는지를 노래로 알려주던 왕조의 후예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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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화산 이씨의 시조 이용상은 어쩌면 고려에 와서 크게 놀랐을지도 모르겠구나. 또 하나의 베트남 출신 성씨였던 정선 이씨가 고려에 이미 정착해 있고, 한때 고려를 쥐고 흔들었던 무신 권력자 이의민이 정선 이씨였다는 말을 들었다면 말이지(정선 이씨도 베트남 정부에서 리 씨 왕조의 후예로 공식 인정받았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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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의민이 베트남 사람이었느냐고 눈 동그랗게 뜨고 묻지는 마라. 기록을 대조해보면 나이도 맞지 않고 애매하여 사실이라고 확정할 수 없을 뿐더러 베트남에서 고려로 왔다는 이양혼의 6세손이니 고려 사람이 다 돼 있었을 거야. 심지어 화산 이씨 시조 이용상의 경우도 화산 이씨 족보에만 그 행적을 남기고 있을 뿐, <고려사>나 베트남의 공식 사서에는 이름이 등장하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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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렇게 한번 생각해보자꾸나. 화산 이씨와 정선 이씨가 별로 권위를 드높이는 데 도움이 안 되었을 ‘베트남’ 왕족을 자칭하고 있음은 무얼 말할까. 그만큼 많은 교류가 있었고 실제로 이런저런 이유로 우리 땅에 들어와 어우러진 베트남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는 방증 아니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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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고려 왕조의 개방성과도 관계가 있단다. “고려는 ‘내자불거(來者不拒)’, 즉 ‘오는 자는 거절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견지했는데, 궁극적 목적은 인재 등 인력 확보에 있었다… 대몽전쟁으로 인구 부족이 심화하자, 외국에 잡혀갔거나 외국으로 흘러간 유민들을 데려오는 이른바 ‘추쇄(推刷)’ 정책을 실시했다. 이러한 유민들과 함께 귀화인에 대해서는 반드시 호적에 편입시키고, 성을 하사했다. 성을 하사할 때는 관직을 제수하고 작위를 주며 식읍을 함께 내리기도 했다(정수일, ‘문명교류기행’ <한겨레신문> 2005년 3월2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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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절벽 시대의 아우성이 들리고 언젠가는 ‘한민족’이 없어진다고 호들갑을 떠는 요즘, 한번 떠올려볼 일이 아닐까? 적어도 고려 시대 우리 조상들은 오늘날 우리보다는 품이 넓었던 것 같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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