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 게시판] 한 희생의 나비효과: 어쩌면 "Korea"란 단어가 사라질 뻔 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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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번 글에서 후백제가 고려에 다소 허망하게 멸망하게 된, 우리 역사상 어쩌면 가장 황당했던(?), 936년 일리천(=구미) 전투를 소개해 드렸었는데요.

우리 역사상 최고로 황당했던(?) 전투, 고려와 후백제 간의 일리천(=구미) 전투

그보다 약 10년을 앞선 927년, 왕건의 고려가 견훤의 후백제에게 몰리면서 오히려 멸망 직전까지 갔던 공산(=대구 팔공산) 전투 이야기입니다.

1) 경상도 서부에서 패권다툼을 벌이던 고려와 후백제


후삼국 말기의 (통일)신라는 거의 기울었었기에, 경상도 서부 지역조차 신라의 통제에서 거의 벗어나 고려와 후백제 간의 패권다툼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이 지역 호족들은 대체로 신라에 유화정책을 폈던 고려와 더 가까웠음에도, 후백제의 세가 강하여 양쪽 눈치를 다 봐야할 정도였습니다.

그렇게 경상도 서부 지역을 놓고 백제와 고려가 수시로 맞붙는 와중에, 고려는 백제가 점령한 대야성(=합천) 등을 탈환하는데 성공합니다. 대야성 탈환에는 신라군도 같이 참전했습니다.

이에 분노한 후백제의 견훤은 과감하게도 신라로 진군해 버립니다. 신라는 이것을 눈치챘고 고려에 구원병을 요청했지만, 후백제의 기동이 더 빨랐습니다.

견훤은 서라벌(=경주)을 급습하여 왕궁에 방화를 하고, 신라의 "경애왕"과 그 왕비를 자결케 하고 친백제성향을 보였던 신라 호족들의 추천을 받은 김부를 "경순왕"으로 즉위시킵니다. 그렇게 신라는 박씨왕조에서 다시 김씨왕조로 돌아가게 되는데요. 고려군이 구원을 오기 불과 몇일 사이에 신라 천년 왕실에 갖은 수모를 주었습니다. 과거 "의자왕"의 한을 갚았다는 말도 남깁니다. 이로 인해 신라인들의 백제에 대한 반감이 커졌다고 합니다.

그러나 견훤은 신라에 오래 머무를 수는 없었습니다. 이미 고려가 후백제의 본진 쪽을 침공한 상태였습니다. 신라를 잠시 점령한다고 주변 호족들과 신라인들의 민심을 단숨에 얻고 통치할 수준은 못되었던 것이죠. 친백제 왕조를 급히 세우고 본진으로 말을 돌립니다.

당시 신라는 거의 소멸 직전이었지만, 고려와 후백제 누구도 강제로 점령하려하지는 않았습니다. 유화책을 펴면서 지역 호족들을 규합해 가면서 민심을 얻어 자연스럽게 이양 받기를 원했던 것이죠. 비록 고려왕, 후백제왕이라 할지라도 강원도와 경상도 지역의 호족들을 힘으로 자기 발 아래 놓을 수 없었습니다.


2) 왕건, 다소 무리한 구원 출정으로 화를 자초하다


이 소식을 접한 고려 왕건은 분노하면서 이미 보낸 선발대 1만에 더해 직접 기병 5천을 추가로 이끌고 구원 출정을 나섭니다. 총 1만 5천명의 병사로 먼 길을 급히 행군합니다.

서라벌에서 나와 호남지역으로 이동하려는 후백제가 공산(=현재의 대구 팔공산) 지역을 지날 것으로 보고, 미리 자리잡고 있다가 공격하려는 전략을 취했습니다.

그러나 후백제군의 병사는 더 많았던 데다가, 고려는 이쪽 지리에 그리 밝지 못했습니다.

고려군이 오는 것을 안 견훤과 책사 최승우 등은 역으로 고려군을 공산으로 포위해 들어가 옴짝달싹할 수 없게 만들어 버렸습니다.

여기서 수 차례 정예병들이 격돌한 끝에, 고려는 막대한 피해를 입고, 뒤로는 산뿐인 상태로 몰려 버립니다.

왕건은 더이상 갈곳이 없어졌습니다.

동맹국이자 삼한통일을 위해서 반드시 그 민심을 얻어야 했던 천년 사직의 신라를 후백제에게 잠시지만 내주어 자존심이 크게 긁혔고, 친백제계 왕조가 들어섬으로써 그간의 고려와 신라 간 공조하여 후백제를 치는 전략에 금이 갈 우려를 하여, 급하게 출병한 것이 화근이었습니다.

지리적으로도 어두운데다 병력도 앞서지 못했습니다. 물론 추후 후백제 땅을 점령했던 일부 고려군대를 더 부를 수 있다는 자신감도 있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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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숭겸 고려 대장군>

3) 왕건의 의제 "신숭겸", 왕건으로 위장하고 산화하다


고려의 대장군이자 왕건의 의제 "신숭겸"은 당대의 맹장이었습니다. 그는 코너에 몰리자, 왕건의 옷을 입고 왕건의 말을 타고 전투에 임해 시선을 분산하며 길을 내었습니다. 그는 화살을 맞고 전사했습니다. 맨 위의 대표 이미지를 잘 보시면 앞장서서 나가는 왕의 복장을 한 자가 "신숭겸"이고, 이 그림의 이름은 "신숭겸 충렬도"라 불립니다.

또한 "김락" 장군은 실질적으로 병졸 옷으로 위장한 왕건을 도피시키는 데 기여하고, 전사했습니다.

이렇게 핵심 장수들의 기지에 따른 산화로 왕건은 아주 간신히 공산을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전투 중 날이 어두운 시점을 택해 길을 돌파했기에, 후백제군은 "신숭겸"을 "왕건"으로 착각하고 그의 수급을 취해 견훤에게 바쳤습니다만, 그것은 왕건이 아니었지요.

왕건을 죽일 수 있었던 절호의 기회를 놓친 견훤은 이때 큰 한탄을 했다고 합니다.

이때 왕건은 거의 혼자에 가까운 수준으로 공산을 넘어 도피했으며, 당시 살아돌아온 고려군은 70여명에 지나지 않았다고 합니다.

왕건이 숨어 도피한 기간에 대해 논란이 많지만, 하루이틀 수준이 아니라 상당기간을 주변 절, 동굴 등에 숨어 지내면서 정말 구사일생, 기사회생했다는 것이 대체적인 견해입니다.


4) 도피에 성공한 왕건의 "안심" 그리고 "반야월"


그는 의제를 버리면서까지 간신히 도주에 성공했는데요.

오랜 도피기간을 지나 산을 내려오면서 이제 살았다고 그제서야 "안심"했다고 전해지는 지역이 바로 현재의 대구시 안심동이라고 합니다.

그때 어두운 산속에서 도피길을 비춰준 달을 "반야월(半夜月)"이라 불렀다고 하네요. 이것이 유래가 되어 그 지역은 반야월동이 되었다고 전해집니다.

그 외에도 현재 대구에는 왕건 관련 숱한 지명들이 많다고 합니다.

심지어 당시 8명의 장수가 공산에서 전사하여 추후 "팔공산"이 되었다는 에피소드도 내려오고 있다고 하네요.

왕건은 돌아온 뒤, "신숭겸", "김락" 장군 등의 시신을 찾아 전국 주요 곳에 사당을 만들어 극진히 대우했다고 합니다.


5) "신숭겸"의 나비효과: 고려의 삼한통일


"신숭겸"이 대신 죽는 기지를 발휘하지 못했다면, 왕건은 공산에서 최후를 맞으면 고려가 중기적으로 멸망했을 수도 있었습니다. 물론 수도가 털린 것은 아니므로 후손들이 정비를 했을 것입니다만,

당시 고려는 "왕건"의 리더십으로 많은 호족들을 간신히 규합한 상태였습니다. 거기에 이렇게 큰 패배를 당했으므로 리더십은 더 훼손될 수도 있었습니다.

실제로 이후 몇년 간 고려는 후백제와의 싸움에서 계속 밀리는 양상을 보이게 되는데요.

하지만 "신숭겸"의 장렬한 전사와 "왕건"의 신라 구원 출정은 결과적으로 "경순왕"조차 더욱 친고려 정책을 유지하도록 만들었습니다. 얼떨결에 친백제계 인사들의 도움까지 받아 즉위했지만, 사실 그는 중립적인 자세를 취해왔었고, 사실 그도 전통의 신라 김씨왕조의 핏줄인데다가, 비록 박씨왕조였다고는 하나 "경애왕"을 자결케한 치욕을 목격했기 때문에 , 그도 취임 후에는 되도록 친고려 노선을 취했습니다.

또한 경상도 지역의 호족들도 왕건의 이러한 의리에 감동했다고 합니다. 이들은 추후 후백제를 치는데 모두 힘을 모아 왕건에 합류합니다. 심지어 궁예를 세우는데 기여했던 강원도의 명문 호족 "김순식" 역시 왕건에게 충성을 맹세했습니다.

추후 고려의 힘이 다시 강해지자 "경순왕"은 결국 고려에 항복하여 신라의 사직을 스스로 버리고 신라 백성들의 안위를 택했습니다. 이때 "경순왕"의 태자는 이를 반대하고 산에 들어가 마의를 입고 살았다하여 "마의태자"로 불리기도 합니다.

건국 초기 왕권이 약했던 시기였기도 했겠지만, "왕건"은 "경순왕"에게 자신의 딸을 내어주어 혼인케하고, 본인도 "경순왕"의 백부의 딸을 아내로 삼아, 사실상 고려는 조선으로 바뀌기 전까지 계속 신라왕실의 핏줄을 함께 가지고 있게 될 정도로 신라인들에게 유화책을 썼습니다.

물론, 고려가 삼한통일을 이룬 후에는 추후 후백제 귀족들에게도 어느 정도 대접을 해주었습니다.

그렇게 명분있는 구원 전투를 나섰던 왕건이기에 비록 패배했지만 더 많은 지지를 얻어낼 수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공산 전투에서 죽었다면 이것은 모두 의미가 없었을 것입니다.

※ 따라서 "신숭겸" 고려 대장군이 왕건을 대신해 전사한 그 기지가 보인 나비효과는 결국 우리 역사의 무게추를 결국 고려로, 다시 고려는 삼한통일로 이르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을 듯합니다.


※ 나비효과의 확대해석(?)


이때, 고려가 멸망했다면, 어쩌면 현재의 "Korea"란 단어는 남아있지 않았을 가능성도 조금은 있었겠지요?

참고로 최근 대구시는 공산전투와 왕건 도피코스 위주로 트레킹 코스를 개발했다고 합니다.^^ 저도 기회되면 가보고 싶네요.

<일반인이 잠깐 공부한 짧은 견해일 뿐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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