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 게시판] 운요호의 대포소리

1875년 9월 20일 운요호의 대포 소리

1875년의 동아시아는 조용하지 않았다. 신년 벽두를 갓 벗어난 2월 청나라의 서남 변경, 즉 버마와의 국경 지대에서 총성과 비명이 들렸다. 버마를 완전히 점령한 영국은 버마와 중국을 연결하는 철도를 구상했고, 그를 위한 현지답사차 부영사 마가리라는 이를 보냈는데 이 과정에서 청나라 조정의 허락과 협조를 생략했다. 갑자기 들이닥친 양코배기들에게 청나라 관리와 현지 인민들은 저항했고 마가리 일행은 죽음을 당하고 만다. 영국은 이 사건으로 청나라와 단교하고 더 많은 이권을 따낼 압박 수단화한다.
.
한편 일본은 러시아와 사할린 등을 놓고 벌인 영토 협상을 끝맺는다. 사할린을 러시아가 점유하되 어업권과 각종 권리를 공유한다는 조건이었다. 당시 영국은 러시아의 남하에 맞서서 이른바 "Great Game"을 각지에서 벌여 왔기에 러시아의 남하를 막아 준다면 그 누구와도 동맹을 맺을 태세가 되어 있었고, 미국은 일본이 오키나와를 침공할 때에도 열강의 불만에도 불구하고 지지해 준 나라였다. 프랑스는 월남 점령에 정신이 없었고 독일은 아직 본격 제국주의 대열에 합류하기 전이었다. 청나라가 마가리 사건 등으로 발이 묶인 상황, 러시아와는 골칫거리를 없앴고, 든든한 뒷배가 있는 일본은 지금껏 구미 열강에 얻어터지면서 배운 것을 실습해 볼 여지가 생겼다. 상대는? 당연히 만만한 조선이었다.
/
메이지 유신 때 왕정복고를 선포하고 이를 알렸을 때 감히 황제국이 쓰는 용어를 썼다는 이유로 문서접수조차 거부했던N'무엄한' 조선을 치고 부국강병의 발판을 삼자고 했던 사이고 다카모리 등의N'정한론' 이후 호시탐탐 조선을 노려 왔던 일본은 러시아 페테르스부르크에서 영토 협상을 마무리하자마자 군함을 부산으로 보낸다. 그 배 중의 하나의 이름이 운양호, 일본어로 운요호라는 배였다.

운요호.jpg

원래 영국의 목조 기선이었던 것을 일본이 사들여 군함으로 개조한 배였다. 하지만 그 배에 실린 포의 위력은 대단했다. 사정거리는 조선의 구식 화포의 몇 배에 달했다. 훈련을 한답시고 운요호의 포대가 불을 뿜자 조선 부산포와 동래부의 백성들은 까무라칠 듯 놀랐다.

사할린을 일본이 러시아에게 양도하는 의식을 치른 것이 9월 19일이었는데 바로 다음날인 1875년 9월 20일 운요호는 서울의 코앞이자 조선의 수도 방어선의 핵심인 강화도 앞바다에 태연하게 나타난다. 그들은 한강 하구의 바다를 측량하기도 하고 심지어 먹을 물을 구한다는 핑계를 대며 잔뜩 긴장한 강화도 초지진 앞을 어슬렁거리다가 포격을 받는다. 불감청이언정 고소원이라, 운요호는 대응 포격을 퍼붓는다. 초지진의 대포알은 바다에 떨어졌지만 운요호의 포탄은 어김없이 초지진을 때렸다. 이노우에 함장은 상륙해서 초지진을 뭉갤까 고민하다가 수심이 낮고 병력도 적어 일단 보류한다. 그리고 이노우에가 선택한 먹잇감은 영종진, 오늘날의 영종도였다.

그때까지 영종도는 어떤 병화(兵禍)도 미치지 못했던 일종의 길지라고 전해져 왔다. 몽골군도 청나라군도 왜군도 강화도까지는 몰라도 영종도에 들어온 일이 없었다는 것이다. 영종진에는 첨사 이민덕 휘하 500명 이상의 조선 병사들이 지키고 있었다. 그런데 운요호에서 내려보낸 상륙병 22명 앞에 처참하게 짓밟힌다. 첨사 이민덕은 관인(도장)을 잃어버릴 정도로 경황이 없이 내뺐고, 무려 서른 다섯 명이 전사했다. 일본군은 부상 2명 (이후 1명 사망)이었으니 가히 어른과 어린 아이의 싸움이었다. 대포와 화승총까지 실컷 빼앗은 운요호는 의기양양해서 돌아간다. 이게 운요호 사건이다.

운요호영종도.jpg

조선의 양반들과 기득권층들이 자신들의 배를 쓰다듬으며N'불온한' 세력들의 준동과N'체제파괴적 세력'들에 대해 서슬을 돋우는 동안 조선 천지는 외부의 변화와 자신들의 상황에 대해 불행할 만큼 무지했다. "우리가 저들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데 왜 저들이 우리에게 해를 끼치겠는가." 같은 순진하다 못해 절망적인 낙관이 넘쳐났고, 무엇보다 나라를 이끄는 사람들이 그 변화를 수용할 의사와 능력이 부족했다. 물론 그들의 탐욕스런 지배를 고스란히 받아내던 백성들이라고 해서 그 책임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최근의 연구에 의하면 운요호 사건의 장본인은 이토 히로부미라고 하는데, 그를 위시한 일본 정부는 러시아와 사할린 문제를 완결짓자마자 바로 행동에 나서서 자신들이 미국에 당했던 그대로 포함외교를 통해 조선의 문을 강제로 열어젖힌다. 그리고 그 이전에 청나라에게는 조선이 사실상의 독립국임을 인정받고 청나라의 개입을 봉쇄할 만반의 태세를 갖추고 있었다. 딱 그 즈음 조선 왕국의 왕비는 무당에게 군(君) 칭호를 주면서 금강산 일만 이천 봉 봉우리마다 막대한 재물을 갖다바치고 돌 맞은 세자의 만수무강을 기원하고 있었다.

중국이 패권주의를 노골화하고 일본이N'전쟁할 수 있는 국가'를 선언한 지금, 과연 우리는 어떤 처지일지 한 번 돌아보았으면 좋겠다. "너 군국주의자냐?"는 눈살을 받고 싶진 않지만, 남북 관계는 기본으로 하고, 동북아시아에서의 군사적 역학 관계와 올바른 국방 정책이 무엇인지에 대해 얘기하는 고민은 꼭 필요할 것이다. . 평화만큼 비싼 물건도 없고, 유사품 구입했다가는 피눈물을 흘리며 그를 후회해야 하는 물건도 없기 때문이다. 운요 호의 포격 앞에서는 어떤 기백도, 정신력도, 평화의 백기도 그 순간만큼은 무력했다.

0
0
이 글을 페이스북으로 퍼가기 이 글을 트위터로 퍼가기 이 글을 카카오스토리로 퍼가기 이 글을 밴드로 퍼가기

자유 게시판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수
846 자유 게시판 미국의 입김에 흔들리는 UN 기구들 icon Work4Block 09-30 2,000
845 자유 게시판 파산에서 살아난 기업 (2) : 애플 icon Work4Block 09-30 2,792
844 자유 게시판 왜 지구는 평평하다는 생각이 나왔을까? icon Work4Block 09-30 1,896
843 자유 게시판 숙취, 어찌 할 것인가? icon Work4Block 09-30 2,494
842 자유 게시판 크리스토퍼 콜럼버스 그리고 역사가 각색되는 이유 icon Work4Block 09-30 2,479
841 자유 게시판 환투기세력과 무역마찰 icon Work4Block 09-30 1,940
840 자유 게시판 달러 인덱스와 비트코인 대체제와 로물루스와 레무스 달러를 죽여야 비트코인이 산다 icon Work4Block 09-29 2,166
839 자유 게시판 애널리스트의 투자 의견을 믿지 말라. icon Work4Block 09-29 2,178
838 자유 게시판 세계 금융 자본은 런던으로 -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의 비상과 추락 2부 icon Work4Block 09-28 2,910
837 자유 게시판 이름없는 무장의 기적적 승리 icon Work4Block 09-28 2,845
836 자유 게시판 프로메테우스와 에피메테우스 선각자와 후발주자 암호화폐 투자 icon Work4Block 09-28 2,625
835 자유 게시판 운요호의 대포소리 icon Work4Block 09-28 2,039
834 자유 게시판 도전과 변화의 리더십 : 카이사르 (10) icon Work4Block 09-28 2,089
833 자유 게시판 공자의 탄생 비화 야합과 중개인은 가라 블록체인 스마트 컨트랙트 icon Work4Block 09-28 2,109
832 자유 게시판 도전과 변화의 리더십 : 카이사르 (9) icon Work4Block 09-27 2,269
831 자유 게시판 美中무역마찰과 중국의 물가 icon Work4Block 09-27 2,355
830 자유 게시판 아시아 무역과 금융 혁신 -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의 비상과 추락 1부 icon Work4Block 09-27 3,166
829 자유 게시판 신흥국 자금조달과 안정성문제 icon Work4Block 09-26 2,359
828 자유 게시판 실탄 떨어진 중국의 對美대응(2) icon Work4Block 09-26 2,485
827 자유 게시판 실탄 떨어진 중국의 對美대응(1) icon Work4Block 09-26 2,7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