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 게시판] 돈이 사악해지기까지 | 페니키아인과 그리스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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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강력한 군대가 필요하다.
물론 전략과 전술이 승패를 좌우하지만, 전략과 전술이 전쟁의 요소가 되려면 그것을 수행할 수 있는 잘 조직된 군대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잘 조직된 군대를 만드는 것과 유지하는 것은 결국 돈이다.



단순히 크기만을 비교하자면 그리스와 페르시아는 비교의 의미가 없을 정도로 차이가 확연했다. 하지만 고대의 두 나라는 혈전을 벌였고, 결국 그리스가 대제국 페르시아에 승리를 거뒀다. 그리스 승리의 원동력 중 하나는 경제력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온 세계를 지배하던 페르시아에 맞설 수 있었던 그리스의 경제력은 어디서 왔을까.



고대 그리스 사람들은 주홍색과 자주색의 옷감을 팔러 오는 사람들을 붉은 사람들 이라는 뜻의 페니키아인으로 불렀다. 하지만 정작 페니키아인들은 본인들을 가나안Canaan 인이라고 칭했다. 가나안 지역은 오늘날의 시리아, 레바논 지역을 일컫는 말로, 인근 부분을 지칭하는 또 다른 명칭인 레반트 지역 보다는 협소한 개념이다.



페니키아인들은 이 지역에 도시를 세우고 번성했는데, 기원전 3천 년 전부터 번성하기 시작하여 기원전 900년에서 기원전 600년의 시기에는 지중해를 지배했다. 이들은 뛰어난 항해술을 바탕으로 키프로스 섬, 에게해, 이탈리아, 북아프리카, 스페인을 종횡무진 누비고 다녔고, 처음으로 식민지라는 개념을 활용한 민족으로 꼽힌다. 지중해 연안을 따라 정착하고 도시를 세워나갔으며, 지브롤터 해협을 지나 대서양으로 진출한 흔적이 발견되고는 한다. 훗날 지중해의 해양 패권을 차지하는 카르타고도 페니키아인이 세운 도시 국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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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니키아인의 식민 도시와 해상 교역로

페니키아인이 지중해를 넘어 대서양에 이르도록 바다를 지배할 수 있었던 이유는 레바논 지역에 풍부한 백향목에서 찾아볼 수도 있겠다. 성서에 나오는 아담이 에덴 동산에서 쫓겨날 때 가지고 나온 나무 3그루가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백향목이다. 백향목은 레바논 산맥의 해발 2000m 이상의 지대에서만 자라는 나무로서 재질이 매우 단단해 고대부터 최고의 건축 자재로 인정받아왔다. 그리고 오리엔트 지역에서 목재가 가장 풍부한 지역이 이곳 레반트 지역이었다.



점토판의 시대가 가고 이집트의 파피루스로 문자를 기록하기 시작한 시대, 페니키아인들은 백향목을 이집트에 판 수익으로 파피루스를 사들고 돌아왔다. 그리고 파피루스를 메소포타미아와 그리스에 되파는 중계 무역에서 활약했다. 이들에게 백향목은 부의 근원이었다. 이렇게 중계 무역을 통해 축적된 부는 선박에 대한 투자로 이어졌는데, 백향목은 크기가 큰 나무들의 경우 높이가 40m 를 넘고 둘레는 4m 에 달했으니, 커다란 선박을 만드는데도 안성맞춤이었다.



대형 선박은 원양 항해를 가능하게 해줬다. 그리고 계속 쌓여가는 항해 경험은 페니키아인들로 하여금 야간 항해에 필수인 천문 항해술까지 축적하게 해줬다. 페니키아인은 24시간을 온전히 항해할 수 있었기에 당시 지중해 세계의 그 어떤 민족보다도 빠르게 지중해를 오갈 수 있는 민족이 된다. 청동의 원료인 주석을 찾아 잉글랜드에 들르고, 모피를 찾아 북유럽까지 나아갔는가 하면, 아프리카에서 보석과 상아 등을 들여와 사람들의 이목을 사로잡았다. 페니키아인들은 주석과 보석, 상아 등의 고가품을 얻기 위한 자본을 소금으로 마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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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반트 지역에는 백향목뿐만이 아니라 소금, 올리브, 포도나무도 풍부했는데, 소금, 올리브, 포도나무의 공통 분모는 지형과 기후다. 특히 천일염의 경우 단순히 바닷물만 있으면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건기와 우기가 뚜렷해야 하고, 높은 온도와 적당한 바람이 있어야 생산이 가능한데, 오늘날에도 천일염을 생산할 수 있는 곳은 많지 않다. 지중해 연안 일부, 호주 서부, 인도 서부, 그리고 우리나라 서해안. 기후와 바람에 갯벌까지 있어야 생산이 가능한 것이 천일염이다.



페니키아인들이 생산하던 천일염은 순도가 높고 품질이 우수해 다른 지역의 소금 보다 비싸게 팔렸다고 한다. 게다가 고대 이집트에서 소금의 가격은 금과 같았다. 누비아와 아나톨리아에 금이 있었다면 레반트에는 소금과 백향목이 있었던 셈이다.



이들은 레반트 지역 해안가에 마치 줄로 꿴 듯 줄줄이 해안 도시를 세웠다. 그리고 연맹의 형태를 취함으로써 아시리아-바빌로니아 그리고 이집트의 틈에서도 굳건하게 세력을 유지했다. 해양 민족의 대이동으로 멸망하기 전까지 이들 도시는 대단히 부유했다. 따라서 레반트의 영유권을 주장할 수 있는 제국이 계속 바뀌었다 한들, 강력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전제 군주의 힘이 미치기 힘든, 비교적 자유로운 도시 국가 연맹으로 남을 수 있었다.



티레, 시돈, 베이루트, 비블로스, 트리폴리스, 우가리트 등의 도시 국가들이 페니키아인들의 도시였는데, 이들은 목재와 소금을 메인 아이템으로 삼아 지중해 전역과 해상 교역을 행했다. 정복 전쟁을 통해 약탈에 의존했던 고대 지중해-오리엔트 세계에서 교역으로 부를 축적했던 이들 상업 도시들은, 오늘날의 시선으로 봤을 때는 굉장히 세련된 도시들이었다.

이 페니키아인들과 돈독한 관계를 유지한 민족들이 있었으니, 하나는 유태인이며 다른 하나가 그리스인 이었다.

페니키아인과 그리스인 II 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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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가치, 희소성, 합의 그리고 믿음
#2 아름다움
#3 환경
#4 누비아의 금
#5 일렉트럼 : Electrum
#6 믿음을 강요하는 화폐 I
#7 믿음을 강요하는 화폐 I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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