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 게시판] 잊혀진 꿈의 동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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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진 꿈의 동굴”
1994년 크리스마스를 얼마 안 남겨놓은 12월, 장 마리 쇼베가 이끄는 세 명의 탐사대는 프랑스 남부 아르데슈 강변을 조사하고 있었다. 그들은 우연히 원래는 동굴이었으나 낙석에 의해 입구가 막혀버린 동굴을 발견했다. 동굴입구를 뚫고 들어선 그들에게 믿긴 힘든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다. 약 330m 동굴에는 수 십 마리의 말떼와 곰, 표범, 사자. 털코뿔소, 맘모스, 들소, 늑대, 여우, 메갈로세로스 사슴, 순록 등의 방금 그린 듯한 선명하고 역동적인 그림들이 벽면을 따라 파노라마처럼 펼쳐져 있었던 것이다.
이 놀라운 동굴의 벽화들은 탄소연대측정 결과 약 3만2천년에서 2만7천년에 걸쳐 조성된 것으로 밝혀졌다. 우리가 알고 있는 대표적인 동굴벽화들인 알타미라나 라스코 동굴벽화보다 거의 두 배 빠른 시기에 그려진 것이었다. 발견자에 이름을 따 ‘쇼베동굴’로 명명된 이 동굴과 벽화들에 대해 명장 베르너 헤어조크 감독은 2010년 <잊혀진 꿈의 동굴(Cave Of Forgotten Dreams)>이란 타이틀로 다큐멘터리 영화를 제작했다. 세계적인 감독들의 다큐멘터리 제작은 거의 일반적인 모습니다. 결국 영화는 현실에서 출발하며, 다큐멘터리는 현실에 대한 이해의 깊이와 폭을 더욱 확장시킨다는 의미가 아닐까. 최근에 봤던 사진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라면 꼭 봐야할 작품이라고 강력추천하고 싶은 <제네시스: 세상의 소금(The Salt of the Earth), 2014>에서 느꼈던 충격을 <잊혀진 꿈의 동굴>을 또다시 상기시킨다. 베르너 헤어조크 감독은 극영화 꼭에서는 근래 들어 그리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한다. 그러나 그와는 달리 다큐멘터리 쪽에서는 <그리즐리 맨(Grizzly Man), 2005>, <세상 끝과의 조우(Encounters At The End Of The World), 2007> 같은 영화에서 이미 탁월한 연출자로서 그 역량을 과시했다.
동굴벽화는 평면이 곡면에 그려졌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동물들이 마치 살아 움직이는 듯한 역동성을 부여한다. 더불어 선사인들은 그림을 그리기 위하여 횃불을 들었을 때 대상인 그림자 떨림까지도 섬세하게 묘사함으로서 그 역동성의 생생함을 더욱 배가했다. 헤어조크는 이 경이로 가득 찬 동굴벽화들을 단순히 평면적인 선사시대인의 예술적 감각이라는 시선에서 쫓지 않는다. 그래서 입체적인 3D 영상으로 제작했지만 아쉽게도 나의 모니터는 3D를 지원하지 않는다. 약 3만년의 시공간을 초월하여 인간이란 무엇이며 인간을 둘러싼 세계에 대해 질문을 던지며 탐색한다.
쇼베동굴 벽화는 약 5천년에 걸친 장구한 시간에 걸쳐 기존을 그림들을 겹쳐 첨가했고, 또한 새로운 사물들을 끊임없이 그렸다. 각각 달랐던 그들은 과거, 현재, 미래라는 개념을 뛰어넘어 하나의 시간과 점에서 조우한다. 벽화를 그들이 이런 그림을 그린 이유는 ‘나’ 아닌 세계와의 끊임없는 교감이었다. 벽화를 그린 사람들은 동물들과 여성의 성기만을 화폭에 담고 ‘자신’을 담아내지 않았다. 오직 그린 건 마치 내가 그렸음을 알리고, 남기려던 것이었을까. 그저 손바닥을 찍어냈을 뿐이다. 그것을 ‘주체’로서의 서서히 각성이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나’를 의미하는 손바닥을 통해 세계의 만물, 또 그 너머의 ‘초자연’의 세계와 연결된다는 것일까. 어떤 학자는 그 세계관을 ‘유동성’과 ‘투과성’이라고 설명한다. 사람이 동물이나 나무가 되고, 동물과 나무가 사람이 되는 유동성이다. 또한 그들의 세계는 ‘벽’이라는 장애가 존재하지 않았다. 자연에서 영이 지배하는 초자연의 세계를 넘나든다는 것이다. 결국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사물을 이해하는 ‘상상력’의 척도요 발로였다.
쇼베동굴과 마찬가지로 알타미라 동굴이나 라스코 동굴을 비롯한 대부분의 벽화들은 마지막 빙하기에 그려졌다. 프랑스 남부와 서로 접경한 스페인북부, 독일남부 등은 벽화를 통한 일종의 ‘문화적 네트워크’가 형성되었다고 할만하다. 벽화가 서로의 느낌과 생각을 공유하는 소통의 중요한 도구가 되었다는 것이다. 후기 빙하기 시대는 어쩌면 인류의 ‘잃어버린 낙원’의 시대였는지 모르겠다. 남극과 북극의 거대한 빙하들이 각각 남과 북으로 확장됨으로서 인류를 비롯한 모든 생물들이 살아갈 수 있는 지역은 좁아졌다. 빙하기를 온통 지구상이 얼음으로 덮혀 있던 시절이라고 아직까지도 생각하는 사람들은 없을 것이다. 좁은 지역에 모든 생물이 모여 살다보니 인류의 입장에선 지천에 깔린 게 사냥감들이었고, 온갖 나무 열매들과 하천에 물고기들이 넘쳐났다.
먹거리가 풍부한 까닭에 부족 내부에서나 또 다른 부족과의 갈등이 존재할 리가 없었다. 강자와 약자를 구별해야할 이유도 없었고 당연히 억압과 착취도 있을 수 없었다. 빙하 때문에 해수면이 90m나 낮아진 까닭에 모든 육지는 하나로 연결됐다. 지리적인 ‘고립’이 없었던 까닭에 아무리 먼 곳이라 할지라도 ‘소통’이 가능했다. 당시 한반도인들은 이랬을 것이다. 오늘날 황해라 불리는 바다 속 대륙붕을 거대한 벌판으로 활보했을 것이며, 대한해협은 가파른 계곡처럼 여기며 일본이라는 곳을 여행했을지 모른다. 이런 평화로움은 자신의 존재와 이를 둘러싼 세계에 대한 물음과 상상력을 키우고 발휘가 가능했을 것이다. 그 시대의 벽화들은 그렇게 탄생했고 그 시대를 표상한다.
또한 이 시대는 ‘창’의 시대였다. 근거리 사냥만 필요했던 시절에 이만한 무기가 없었다. ‘활’과 ‘화살’이 발명된 건 빙하기가 드디어 끝난 이후였다. 낙원의 평화는 서서히 깨져갔다. 한곳에 옹기종기 모여있던 동물들도 흩어졌다. 생태계가 변함에 따라 열매를 채집하거나 물고기를 잡는 것도 갈수록 어려워졌다. 무엇보다도 ‘낙원의 시대’동안 인구는 너무나 늘어나버렸다. 인간들은 굶주림을 알기 시작했다. 이젠 먼 거리로 짐승들을 쫓아 사냥을 떠나야 했으며 활은 중요한 무기로 격상했다. 이 기아(飢餓)의 시대에는 힘세고 날랜 자들이 득세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먹거리에 많은 부분을 차지했으며, 여성들을 선택할 권리를 가졌다. 약자들은 최소한의 생존을 위해 그들을 떠받들어야 했으며, 아무리 관심이 있는 여성이라도 언감생심이었다. 낙원과 평화의 시대는 가고, 서서히 ‘계급’과 ‘차별’의 시대가 그렇게 도래하기 시작했다.
벽화를 남긴 이들은 흔히 말하는 ‘크로마뇽인’들이다. 이들이 살던 시대에는 또 다른 인류의 가지인 ‘네안데르탈인’도 살고 있었다. 벽화의 시대의 화두가 ‘협력’, ‘소통’, ‘상상’이라고 한다면 네안데르탈의 존재는 ‘나’아닌 ‘타자’와의 ‘공존’의 극명한 체현이었다. 크로마뇽인과 네안데르탈인들이 공존했던 시기는 수 천 년에서 수 만년에 이른다. 네안데르탈인들은 크로마뇽인들보다 훨씬 뛰어난 지적능력을 가졌고, 신체적으로도 장대한 체격으로 우월했다. 네안데르탈인들은 크로마뇽인과 성행위도 가능했지만 임신을 시킬 수는 없었다고 한다. 요즘 학계는 크로마뇽인과 네안데르탈인들을 인류의 연속적인 존재들이 아니라 별개의 종으로 구분하는 것이 지배적이다. 그러나 그들은 크로마뇽인들처럼 동굴벽화와 같은 어떠한 자취도 남기지 않았다. <잊혀진 꿈의 동굴>을 보는 내내 네안데르탈인들이 생각났다. 정작 잊혀진 건 그들이었다.
그들은 멸종했다. 혹자는 크로마뇽인들에게만 내성이 있는 바이러스 때문이라고 하고, 또 어떤 혹자는 우람했던 네안데르탈인들의 체격조건 때문에 사냥 같은 먹거리를 구하는데 불리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리고 다른 학자는 네안데르탈인들의 개인주의적 성향으로 혼자이거나 몇 명 정도의 단위로 활동했기 때문에 두뇌나 체격 같은 유전적 요인은 열등했지만 집단의 효율성을 발휘했던 크로마뇽인과의 경쟁에서 뒤쳐질 수밖에 없다고 하기도 한다. 그러나 ‘직관’과 ‘느낌’, 그리고 ‘상상’할 수 있었던 존재들인 크로마뇽인들에 비해 네안데르탈인들은 너무나 차가운 ‘이성’적인 존재들이었기에 ‘세계너머’를 ‘꿈’꾸지 못했기에 사라질 수밖에 없었던 건 아닐까.
아무튼 <잊혀진 꿈의 동굴>은 ‘역사’에 속박받지 않았던 시대를 새삼 ‘상상’하게 만든다. 3만2천년 전이나 ‘현재’나 모두 마찬가지로 삶이란 ‘무엇을 너머’에 있다. 우리는 어떤 굴레에 여전히 자신을 옭아매고 허덕이고 있는가. 의문과 질문을 여전히 던지고 있는가.
‘쇼베 동굴’은 일반에게는 공개를 안 하고 완전히 폐쇄되어 있다. 간혹 고고학 전문 연구자만 당국의 허가를 받아 연구조사 작업을 할 수 있지만 그 조차 시간이 철저히 제한되어 있으며, 동굴 내 활동할 수 있는 통로도 정해진 통로로만 엄격히 제한한다. 우리나라 대표하는 선사시대 유적인 ‘반구대 암각화’의 실정은 어떠한가. 돈벌이 수단을 이용될 뿐, 잘못되고 허술한 관리로 이미 상당 부분이 훼손됐다. 아마도 몇 년 후에는 반구대 암각화는 사진으로만 대할지 모르겠다.
아무튼 <잊혀진 꿈의 동굴>을 3D로 봤다면 그 역동적 생생함이 더욱더 여운을 흠뻑 적시며 곱씹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