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 게시판] 세키가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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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키가하라’ ”

  • ‘항왜(降倭)’, ‘순왜(順倭)’...그들에게 ‘국가’와 ‘민족’이란...

2017년 일본에서 만들어진 <세키가하라>라는 영화를 웹하드에서 다운 받았다. 죽었다 깨어나도 이 영화는 우리나라에서 개봉 안한다.

‘세키가하라 전투’는 ‘도요토미 히데요시’ 사후 권력의 향방을 놓고 지금의 기후 현에 위치한 세키가하라에서 벌어진 전투를 가리킨다. 1600년 9월 15일, 애초부터 도요토미의 강력한 경쟁자였던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이끄는 동군 10만과 도요토미의 심복이었던 ‘이시다 미쓰나리’가 이끄는 서군 8만이 격돌했다. 일본 역사에서는 도요토미 정권 내부의 ‘무단파’와 ‘문치파’의 권력투쟁이라고도 하는 모양이다. 영화 <세키가하라>는 일본 근세의 명운이 걸린 이 전투와 1598년 도요토미가 죽은 뒤 도쿠가와와 이시다의 치열했던 2년간의 권력투쟁을 담은 정통 역사극이다.

이전에는 도쿠가와를 중심으로 봤다면 이 영화는 이시다를 중심으로 봤다는 게 색다르다고 할까. 일본 역사에 대해 잘 모르지만 대체의 평가는 덕망이 높았던 도쿠가와에 비해 도요토미의 오른팔이었던 이시다는 영리함을 무기로 도요토미의 총애를 받으며 오만방자했고 결국 권력욕망 때문에 무너졌다고 평가하는 모양이다. 그러나 도쿠가와 역시 승자, 역사는 승자의 기록만 남는다. 이 영화에서는 이시다는 천하를 통일한 도요토미를 정치적 기반삼아 새로운 대의와 정의를 실현하겠다고 표방하고 오히려 도쿠가와는 탐욕과 권모술수에 능란한 모사꾼으로 그려진다.

그러나 상당한 물량을 투입하여 만든듯하지만 영화 전개나 구성이 그리 탄탄하지도 않다. 더구나 당대의 일본역사와 인물, 정치제도에 대해 모르다보니 시종 지루한 영화가 되어버렸다. 그렇게 일본역사에 대해 각별한 관심이 없는 한 추천할 만한 영화는 아니다. 특히 인물은 임진왜란에 선봉부대로 참전했던 가토 기요마사나 고니시 유키나가 정도나 알겠고 전혀 모르겠다. 고니시는 이름만 나올 뿐이고, 이시다라는 인물도 처음 알았다.

나름 세키가하라 전투의 의미를 정리하면 일본 전국시대 통일 이후 ‘중앙집권화’를 기도하던 도요토미를 계승한 그의 행정관료 출신인 이시다 세력과 전통적 봉건 질서를 안정적으로 고수하려는 ‘지방분권’의 도쿠가와 세력의 충돌이 아닐까 싶다. 도요토미 다음으로 250만석으로 제2의 영지를 보유했던 도쿠가와다. 도요토미의 주군이자 사실상 전국시대를 통일했던 오다 노부나가의 적이었지만 투항하여 충성을 맹세했다. 오다 노부나가의 지시로 정실 부인과 장남을 자결케 할 정도로 비정하면서도 속뜻을 숨기며 현실과 실리에 충실했던 인물이다.

세키가하라 전투는 거의 20만의 병력이 격돌했으면서도 단 하루 만에 끝난 싱거운 전투였다. 동·서군에 각각 가담한 다이묘 즉 각 지역의 번주들은 어느 쪽의 세가 유리한지 눈치만 본채 절반이상이 전투를 벌이지 않았다. 그리고 서군 측에 위장으로 가담했던 고바야카와 히데아키라는 인물이 배신을 때린 게 결정적이었다고 한다. 그는 도요토미의 정실이었던 ‘키타노만도코로’의 조카였다. 일본사에서 키타노만도코르가 겸손하고 어진 부인으로 평가되는 모양인데, 이 영화에서는 배후에서 모사에 능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여인으로 그려진다. 키타노만도코로는 도쿠가와 진영에 사실상 가담하여 도요토미 진영을 반토막 냈다.

세키가하라에서 승리한 2년 후 도쿠가와는 다시 오사카 전투에서 승리하고 도요토미의 후계자로 첩실 소생의 그 아들 ‘히데요리’를 살해함으로써 권력을 완전히 장악하게 된다. 그리고 약 250년간의 ‘에도막부시대’가 열린다.

다만 이 영화에서 특이한 점은 이시다의 진영에 화포와 화약을 다루는 것에 능숙했던 조선인들이 있었다는 것이다. 사실이 임진왜란에서 패전을 모면할 수 있었던, 특히 ‘이순신’의 제해권 장악은 일본군보다 화포 화력의 우위에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조선의 주력 함선이었던 ‘판옥선(板屋船)’은 2층 구조로 화포 장착과 사용에 당시로서는 최적화된 전함이었다. 화포를 장착하지 못하고 근접해서 백병전 전술의 일본군 함선에 비해 해전에서 절대적인 우위를 점할 수 있었다. 그것은 다양한 화포의 개발과 개량에 의해 가능했다.

또한 임진왜란 당시 조선에 투항한 일본군 중 오히려 일본군에 대항하여 싸웠던 일본인들을 ‘항왜(降倭)’라고 했다. 별도의 항왜부대까지 조직될 정도였으며 그들은 조선인 부대에 비해 훨씬 용맹하고 잔인했다고 전해진다. 반대로 일본군에 포로로 잡히거나 투항했던 조선인들 중에 일본에 부역한 자들을 ‘순왜(順倭)’라고 했다. 이순신의 <난중일기>에서는 ‘사천해전’에서 일본군 선단에서 조총을 쏘는 소총수 중에 조선인들도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임진왜란은 전근대 봉건사회의 전쟁이다. 오늘날의 국가와 민족의 개념으로 이해하기에는 분명 한계가 있다.

임진왜란 와중에 포로 또는 자진투항으로 종전 이후에도 일본으로 간 조선인들이 약 10만 가량이라고 한다. 도쿠가와 막부가 들어서고 조선과 평화협상에 나서자 조선정부는 ‘사명대사(四溟大師)’를 파견했다. 조선과의 관계복원으로 정권의 정통성을 확보하고자 했던 도쿠가와 막부였기에 협상에 따라 상당수가 송환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10만 중에 돌아온 이는 불과 최대 3천에 불과했으며 조선정부는 조선인 백성 송환에 크게 관심을 두지도 않았다. 임진왜란 때보다 훨씬 심하게 50만이 끌려갔다는 병자호란에서 ‘화냥년(환향녀)’라는 비하와 참극을 낳기도 했지만 귀환자는 얼마 되지 않았다.

끌고 간 이유가 노동력을 확보하자는 게 목적이었고, 막대한 송환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들은 얼마 되지않았다. 또한 기층 민중들은 돌아와 봤자 온갖 수탈에 시달려야 하는 땅이었다. 1598년 도공으로 일본에 끌려와 ‘사쓰마도기(薩摩燒)’를 연 ‘심당길(沈當吉)’처럼 일본사회에 남아있는 게 훨씬 나았다. 심당길 이후 14대손 ‘심수관(沈壽官)’으로 오늘날까지 이어져 온 명문도가로서의 명예와 부를 누렸다. 병자호란 당시 끌려간 자들 중에는 조선어 통역관이 되어 조선에 청나라 사신 왕래하면서 무리한 요구로 오히려 조선 정부에 부담과 폐해를 끼친 자들도 꽤 있었다.

평화협상의 제일 전제조건은 임진왜란 당시 일본군에 의해 무참히 파괴된 ‘선정릉(宣靖陵)’의 도굴과 파괴한 자들의 압송이었다. 선정릉은 ‘성종’과 ‘정현왕후’, 그들의 아들인 ‘중종’이 묻힌 능이었는데, 무덤은 파헤쳐져 시신들은 사라지고 불탄 흔적들만 있었다. 결국 10만 백성의 귀환보다 이미 죽은 임금의 조상들의 안위와 복수에만 있었다. 이 또한 당대의 기준과 의식체계 속에서는 당연한 것일 수 있다.

그래서 1606년 실제 선정릉 도굴과 훼손을 했는지 여부를 확인할 수도 없는 일인 두 명이 압송되어 보내졌다. 이들은 도굴과 훼손을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음에도 한 달 동안이나 목숨만 살려두는 잔인한 고문이 행해졌다. 애초 실제 그들이 죄를 범했는지는 중요하지 않은 왜란 이후 추락한 지배권력의 명분과 위상을 위한 희생양이었을 뿐이다. 마침내 이들은 저자거리에서 살갗을 한 점씩 도려내지다가 마지막엔 목이 잘렸다. 그리고 조선정부와 도쿠가와 막부는 1609년 ‘기유약조(己酉約條)’를 맺어 국교를 정상화한다.

조선이나 일본이나 봉건 지배권력의 가혹한 수탈과 압제에 시달리는 기층 민중들에게 ‘국가’와 ‘민족’은 애초 성립될 수도 없는 개념이다. 그들은 더 나은 조건의 삶을 원할 뿐이다. 영화 <세키가하라>에서 도쿠가와군의 공세에 밀며 포위된 이시다군의 잔여병력은 조선인이 잔뜩 쌓아놓은 폭약에 그 조선인이 불을 붙여 폭사를 선택한다. 단지 영화적 설정만은 아닐 것이다.

‘더 나은 삶’이란 목숨마저 내던질 수가 있는 것이다. 돌아오지 못한 자의반 타의반의 10만의 ‘순왜’들. 자의에 의했다한들 그들을 과연 오늘날 기준의 친일부역자라고 부를 수 있을까. 오히려 그들에게는 ‘더 나은 삶’을 위한 ‘기회’였는지 모른다. 역사는 그들을 반대로 시대를 초월한 ‘자유인’이라고 불러야 되는 게 아닐까. ‘페테르 파울 루벤스(1577-1640)’가 이탈리아에서 우연히 만난 조선인을 그린 그림에서 왜 그 ‘자유’가 보일까. 아니면 또 다른 속박의 시작이었을까.

전문가들은 그가 임진왜란 당시 일본으로 끌려갔다가 가톨릭에 귀의했던 ‘안토니오 꼬레아’일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그런데 사료 상에 나오는 ‘안토니오 꼬레아’는 수백 명이란다. 즉 안토니오 꼬레아는 특정 사람의 고유명사가 아니라 가톨릭에 귀의한 조선인을 의미하는 보통명사라는 이야기다.

당시 뱃길로 족히 일 년은 걸려야 도달할 수 있었던 유럽이다. 조선 땅 어느 구석에 주변 산천정도만 알던 그들에게 그 머나먼 여정과 광활한 세계는 무엇을 의미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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