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 게시판] 돈이 사악해지기까지 | 아름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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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푸아 뉴기니 화폐의 이름은 키나Kina 다.

키나는 진주조개를 뜻한다. 이름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이 지역에서는 진주조개를 화폐로 사용했었다. 해안 지대와 고원 지대 사이의 교환 수단으로서 사용되기 시작된 것으로 여겨진다. 아마도 서로의 특산품이 달랐을 것이고, 진주 조개는 운반이나 보관이 용이하면서도 고원에서는 구할 수 없는 물건으로서, 장신구로 사용하기에 알맞았다.



파푸아뉴기니뿐만이 아니라, 기원전 3천 년 전부터 메소포타미아 지역, 중앙아시아, 중국, 한반도 등 사실상 당시 거의 모든 문명권에서 조개 화폐가 사용되었다. 아주 먼 옛날 사람들에게 조개껍데기의 미적 외관은 가치로 기능했을까.



약 200년만 거슬러올라가더라도 조개는 화폐로 쓰였다.
20세기 초 아프리카에서는 카우리Cowry or Cowrie 라는 조개 화폐가 통용되었다. 카우리는 인도양의 몰디브에서 구할 수 있었던 조개로, 몰디브 인근과 인도, 중국, 아프리카와의 무역에서 지불 수단이 되었다. 특히나 그 외관 때문에 중국에서 선호도가 높았으며, 19세기 인도의 기록을 들춰보면 쿠타크 지방에 유통되는 화폐가 금화1, 은화24, 동화4, 카우리 11의 비율로 존재한다는 내용이 나온다. 20세기 초까지 약 천 년간 카우리가 국제 통화로 기능할 수 있었던 이유로 일정한 생산량과 모조가 불가능한 조개라는 점을 꼽을 수 있겠지만, 핵심 가치는 소유하고 싶은 그 외관이다.



미적 외관은 희소성과 연결된다.
카우리는 독특한 문양에 세로로 긴 레몬의 모습처럼 동그랗게 말려있고, 흔한 조개와 달리 부수지 않는 이상 분리가 불가능하다. 오늘날에도 머나먼 인도양의 바다에서나 발견할 수 있는 이국적 모습의 이 조개는 당시로서는 문명의 한쪽 끝에서 맞은편 끝으로 이동된 것이었다. 아마도 오늘날 우리가 상상하기 힘든 희소성을 가졌을 것이다.



인간은 아름다움에 대한 소유욕이 크다.
따라서 손에 넣기 힘든 아름다움은 그 자체로서 가치를 지니게 되었을 것이다.



고대 바빌로니아 제국에서는 지배 계급이 금과 은을 신성시하였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여러 금속 중 하나일 뿐인 금과 은을 심미안으로 바라본 것이다. 태양을 경외하여 훗날 태양신의 존재를 만들어낸 이들은 숭배 대상과 닮은 금에 집착하였고, 달빛에 매료된 사람들은 은을 달의 눈물이라 부르며 치장 도구로 사용했다. 이렇게 아름다움과 희소성이 결부되면서 가치를 부여 받은 금속은 인류의 역사 한가운데에 서서 점차 지불 수단으로서의 지위를 다져나가게 된다.



역사학자 토인비는 인류의 고대 문명을 크게 여섯 문명으로 분류했다.

훗날 바빌로니아 제국을 세우게 되는 수메르 문명.
태양신 Ra 의 자녀들이 되는 이집트 문명.
에게해 크레타 섬의 미노스 문명.
중국.
우리에게 마야력으로 인해 친숙해진 마야 문명.
비극적 운명의 잉카 제국을 건설한 안데스 문명.



이들 여섯 문명 중 다섯 곳의 문명은 모두 화폐를 사용하였다. 반면 다른 다섯 곳과 마찬가지로 고도의 문명을 이룩했던 안데스에서는 화폐를 사용하지 않았다.

그리고 금과 은은 여섯 문명 중 안데스 문명에 가장 풍부하게 존재했다.



금과 은에 대한 인류의 심미안은 모두 비슷하였을 것이다. 그렇기에 모든 문명에서 이 귀금속들은 치장과 장식에 사용되었으리라. 하지만 안데스에서 이들은 구하기 어려운 귀금속이 아니었다. 아마도 안데스 사람들의 눈에 금과 은은 그저 아름다운 금붙이에 불과했을 것이다.



아직 화폐가 등장하기 전 인류는 물물교환을 행했다.
화폐의 역사A History of Money 저자 에드워드 빅터 모건 같은 사람은 인류 초기의 물물교환이 암묵적 거래였을 것이다라고 말했는데, 이 암묵적 거래가 진행될 때 판매자는 구매자를 만나지 않는다. 탁 트인 공간에 물건을 내려 두고 커버를 덮은 채 사라진다. 그러면 구매자는 교환하고자 하는 물건 앞에 자신의 물건을 놓아 둔다. 판매자가 교환 의사가 있으면 구매자의 물건을 들고 사라지고 거래는 성립된다.

교환 비율이 마음에 들지 않을 경우 판매자는 물건 일부를 덜어내고 다시 커버를 덮어두는 방식으로 흥정이 진행된다. 시간이 오래 걸렸고, 거래 가능 물품은 제한적 이었다. 따라서 점차 작고 운반이 편리하며 상징적인 교환 수단을 고민하게 된다.



반면 화폐Money” 의 저자 펠릭스 마틴 같은 사람은 거래 당사자들의 신용과 부채를 기록하고 청산하는 수단으로서 화폐가 고안되었을 것이라 말한다. 모건에서 출발하든 마틴의 주장을 시작점으로 잡든, 운반 또는 보관이 용이한 교환 수단의 필요성에 의해 화폐는 잉태되었고, 필연적으로 교환 수단 자체에 내재된 가치 일부를 포기해야만 했다.



아름답고 구하기 어려워 귀했던 장신구지만 먹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고, 동물의 가죽처럼 추위를 막아주지 못했으며, 사냥 도구로 사용할 수도 없었다.

인류는 생필품이었던 교환 수단을 화폐로 대체하면서 내재 가치를 포기해야만 했고, 이후 수 천 년에 걸쳐 흘러온 화폐의 역사는 화폐의 내재 가치와 점차 작별했던 과정의 기록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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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가치, 희소성, 합의 그리고 믿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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