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 게시판] 돈이 사악해지기까지 | 가치, 희소성, 합의 그리고 믿음

typewriter-1245894_1280.jpg



남태평양 한 구석에 나우루 공화국이라는 나라가 있다.
지도를 펼쳐보아도 척도를 조정하지 않는 이상 찾기가 굉장히 힘든 작은 나라. 세계에서 바티칸 시국, 모나코 다음으로 작은 국가. 이렇게 작은 나라가 1980년에는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였다. 1980년 나우루 공화국의 1인당 국민 소득 $20,000 는 미국이 1987년에 달성한 1인당 국민 소득이었다.



이들은 어떻게 막대한 부를 쌓았을까.
바다새들의 똥이 산호초 위에 수천 년간 쌓여 인광석이 된다. 인광석은 고급 비료의 원료로서 농업 용지를 개간하려는 호주와 유럽 등지에서 폭발적으로 수요가 늘어났다. 섬 전체가 인광석으로 이루어진 나우루 공화국은 그저 땅을 판 후 퍼서, 나르면, 달러를 벌어들였다.

2,000여 년 간 열대 과일의 채집과 낚시 등의 자급자족 생활을 이어왔던 나우루 사람들에게 있어 인광석은 그저 암석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해외 여러 나라에서 인광석 수요가 증가함에 따라 갑작스레 흔한 돌덩이는 가치를 지닌 자원으로 뒤바뀐다.



21km2 너비의 섬은 풍요와 달러가 넘쳐흘렀다.
서울 보다 작은 섬에 페라리가 돌아다녔고, 버려져 있는 람보르기니 신차가 경찰에 의해 발견되기도 했다. 너무 비대해진 주인이 차량에 탑승을 할 수 없었던 게 신차가 버려진 이유였다. 나우루 국영 항공사는 유학 희망자 전원을 해외로 실어 날랐고, 경비는 100% 국비 지원이었다. 이 나라가 전 세계에 걸쳐 소유한 실물 자산의 가치는 당시에 이미 10억 불을 상회했었다.



이 모든 것이 가능했던 것은 돌덩이에N'가치' 가 생겼기 때문이다.



가치가 있는 돌덩이는 또 있다.
그 안에 가치 자체가 내재되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모든 사회 구성원들이 그 가치를 인정한다. 미크로네시아의 Yap 이라는 작은 섬에서는 바위, 정확히 말하면 석회암이 화폐로 통용된다.

약 2,000여 년 간 Yap 사람들은 땅이나 집을 구입하거나, 결혼 지참금, 카누 구입 비용 등을 이 바위를 건네주면서 해결했다. 이 섬은 미국의 영토이기 때문에 식료품 가게나 주유소에서 US 달러가 통용된다, 하지만 Yap 의 사람들은 바위를 지불하여 거래를 하는 것을 더 선호한다. 이들은 달러의 가치가 얼마나 되는지를 잘 모르기 때문이다.

바위를 지불하고 거스름돈을 해결하기는 쉽지 않기 때문에, 잔돈으로서 맥주가 사용되기도 한다. 통계에 따르면 Yap 사람 1만 명이 1년에 4만에서 5만 상자의 맥주를 소비한다고 한다. 달러를 사용할 수 있는 지역에서 바위와 거스름돈으로서의 맥주가 웬말일까.



약 2,000년 전 Yap 의 Anagumang 이라는 전사가 이웃 나라 Palau 의 석회암 동굴에서 거대한 돌을 가져왔다고 한다. Yap 섬에는 석회암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들 눈에는 희귀한 암석이었으리라. 그는 달을 모티브로 삼아 돌을 커다란 원 모양으로 만들었고, 이후로 오늘날까지 바위를 원형으로 깎아 화폐로 이용한다. 큰 원형의 바위 중앙에 구멍을 내어 필요시 빈랑나무줄기를 꿰어 운반하는데, 경우에 따라서는 스무 명 이상의 사람이 동원되어야 이를 움직일 수 있다.

이 돌바퀴 화폐는 암시장 거래가 불가능하고, 도둑맞을 걱정이 없으며, 섬 전체를 통틀어 약 6,600 여개의 돌 바퀴만이 존재하여, 통화량이 고정된다. 이 화폐는 외관상 깨진 곳이 있으면 가치를 잃어버리기 때문에 소유권의 이전으로만 계산을 완료하며, 집 담벼락에 기대어 두거나, 은행에 줄지어 세워두기만 한다. 보기에 따라 사기와 마찬가지인 통화가 사용되는 것은 바위에 가치를 부여한 사회 구성원들의N'합의' 와 합의에 따라 바위가 가치를 지닌다는 그들의N'믿음' 이다. 그리고 아마도 이 합의와 믿음이 출발한 곳은 희소성일 것이다.



특화된 한가지 능력에 의해 먹고, 쉬고, 번식하는 본능에만 충실한 동물들과 달리, 사유를 통해 본능을 끝없이 확장해 나아가는 인간은, 자연히 보다 많은 것들을 필요로 한다. 이러한 인간의 필요를 충족시켜 줄 가치가 깃들어 있는 물건과, 희소성에 따라 달라지는 가치, 인간이 가치를 부여한 사물, 그리고 가치에 대한 믿음.


이것들이 우리가N'돈' 이라 부르는 것의 근원이다.

border_05-long.png

다음글
0
0
이 글을 페이스북으로 퍼가기 이 글을 트위터로 퍼가기 이 글을 카카오스토리로 퍼가기 이 글을 밴드로 퍼가기

자유 게시판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수
626 자유 게시판 의학 상식] 인대는 뭐고, 건은 뭐야? icon Work4Block 08-28 2,999
625 자유 게시판 의학상식] 에어컨, 선풍기 때문인지 감기에 걸렸어요! icon Work4Block 08-28 3,264
624 자유 게시판 의학 만화의 시초 - 데즈카 오사무의 「블랙잭」 icon Work4Block 08-28 5,497
623 자유 게시판 KEEP!T History: 합리적 인간에 대한 의구심, 행동경제학의 등장 icon Work4Block 08-28 2,830
622 자유 게시판 기후 변화, 북극 항로의 연중 항해를 가능케 해줄까? icon Work4Block 08-28 2,645
621 자유 게시판 위스키 배당금과 펌프 & 덤프 icon Work4Block 08-28 2,413
620 자유 게시판 <경제> 채권수익률과 주식시장 관계에 대해 icon Work4Block 08-28 2,877
619 자유 게시판 <소설> 암퇘지 icon Work4Block 08-28 3,018
618 자유 게시판 잡다한 역사이야기 27편 - 장자상속의 조선?? -1- icon Work4Block 08-28 3,174
617 자유 게시판 '브레이브 하트' 윌리엄 월레스 처형 icon Work4Block 08-28 3,079
616 자유 게시판 마지막 황후 icon Work4Block 08-28 3,318
615 자유 게시판 사라진 모나리자와 다시 찾은 불상 icon Work4Block 08-27 3,697
614 자유 게시판 프라하의 봄 얼어붙다 icon Work4Block 08-27 2,991
613 자유 게시판 비트코인은 미쳐 날뛰기 시작할 것이다.manhwa icon Work4Block 08-27 3,049
612 자유 게시판 2018년 소셜 미디어 유니버스 - 스팀잇의 지향점 icon Work4Block 08-27 3,517
611 자유 게시판 2020년대 버블을 맞이할 준비가 되셨습니까? icon Work4Block 08-27 3,455
610 자유 게시판 '탈상업화'의 버닝 맨 축제에서도 점점 커지는 빈부 격차 icon Work4Block 08-27 2,855
609 자유 게시판 엘론 머스크는 천재일까? 미치광이일까? icon Work4Block 08-27 2,943
608 자유 게시판 영국 남해회사 주식은 최초의 ETF였다 icon Work4Block 08-26 2,659
607 자유 게시판 알쓸잡상 57편 - 제트기류 icon Work4Block 08-25 4,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