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 게시판] “힐링이 필요하다면 - <바닷마을 다이어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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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8-23
“힐링이 필요하다면 - <바닷마을 다이어리> ”
우울모드와 심란모드가 쉬이 가시지 않는다. 애초 근원적인 문제라 쉽게 해결될 성질이 아니다. 범람하는 힐링이라는 말 자체를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어쩌면 힐링이 필요할 수도 있다. 시절은 정작 또 다른 의미의 증오와 분노에 신음하는 힐링 절대 필요자들을 양산했다. 소장하고 있는 1870여 편의 영화 중 힐링용 영화를 찾기도 만만치 않다. 우울과 심란함으로 더욱 강력하게 침몰시키거나 반대로 가을햇살마냥 다사로운 영화가 좋다.
다사로움엔 역시 ‘오즈 야스지로’와 현존하는 개인적으론 그의 완벽한 부활이자 틀을 넘어 확장되어 독자적 세계를 구축했다고 생각되는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일련의 작품들이다. 사실 나는 모든 영화를 ‘오즈적인 것’과 ‘오즈적이 아닌 것’으로 대별한다. 그만큼 오즈는 현실생활의 사실성과 일상성을 녹여냈고 숱한 후대 감독들의 영감을 이끌었다. 널리 알려진 거장 오즈보다 현대사회를 같이 숨 쉬는 고레에다가 좋겠다.
오즈와 고레에다의 공통분모는 잔잔한 일상속의 사람과 사람의 ‘관계’다. 특히 그들은 ‘가족’에 천착한다. 오즈가 그 관계와 굴절을, 사람이니까 가족이니까 어쩔 수 없이 인정하며 살아가야 한다는 순응의 의미를 살포시 드러내는데 있다면 고레에다는 그 치유와 화해를 적극적으로 모색함에 차이가 있지 않을까. 이 차이는N'관계'의 질량과 목표가 다른 그들이 각각 살았었고, 살고 있는 시대성의 차이에서 기인한다. 물론 다독이며 어루만져주는 다사로운 촉감이 묻어나올 것 같은 영상미는 이들 영화의 백미다.
고레에다 감독은 어찌하다보니 극영화 전 작품을 가지고 있다. 주로 다큐멘터리만 찍던 고레에다는 1995년 <환상의 빛>으로 극영화에 데뷔했다. 그의 초기작품들은 현대사회 관계의 고립과 단절의 문제가 핵심주제였고, 그 중에는 ‘배두나’가 주연했던 <공기인형(2009)>도 있다. 그러나 그의 작품경향과 스타일이 일정한 변화가 오기 시작한 건 2004년 작 <아무도 모른다>부터였다. 실제 있었던 사건을 토대로 각각 아버지가 다르며 유일한 보호자였던 엄마마저 도망친 어린 4남매의 생존기였다.
이후 고레에다의 관계의 고립과 단절에 대한 문제의식은 ‘가족’에 집중된다. 그래서 일련의 작품들이 십년 전 사고로 죽은 장남의 그늘 속에 살아가는 남은 가족들의 이야기인 <걸어도 걸어도 (2008)>와 이혼한 부모의 재결합을 기원하는 어린 형제들을 분투를 다룬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 (2011)>, 출산한 병원에서 뒤바뀐 아이들과 가족의 이야기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2013)>, 부모가 모두 떠났지만 그들 힘으로 굳건하게 살아가는** 4**자매를 담아낸 <바닷마을 다이어리>, 이혼한 아내에 집착하는 남편을 그린 <태풍이 지나가고 (2016)>가 바로 그것이다.
모두 하나하나 강력히 추천하고 싶은 작품들이다. 가족과 관계의 굴절에 의해 일어나는 상처는 평생의 아픔이다. 심각하고 답답한 주제임에도 고레에다는 일상생활을 우려내는 섬세한 필치와 때로는 잔잔한 미소로 승화한다. 오즈와는 또 다른 매력의 수채화처럼 투명하고 따뜻한 영상은 그 자체로 아픔을 간직한 사람들을 치유해 나간다. 오즈의 영화처럼 단골 출연배우들은 그 배역만 달리해 등장함으로서 일상적 시선과 의미의 효과를 극대화한다. 그래서 또한 오즈처럼 각기 다른 주제임에도 편안히 누워 시청하는 연속극을 보는 것 같다.
특히 추천하고 싶은 영화는 <바닷마을 다이어리>다. 15년 전 ‘사치’, ‘요시’, ‘치카’ 세 자매만 남겨둔 채 아버지는 집을 떠났고 이후 어머니도 떠나버렸다. 그러나 그녀들은 그녀들만의 힘으로 꿋꿋하게 살아왔다. 그런데 아버지의 죽음에 장례식에 참석한다. 그때 자매들은 이제 겨우 중학생인 배다른 형제가 있음을 알게 된다. 아버지는 재혼하여 막내인 ‘스즈’를 낳았고, 재혼한 아내가 죽자 또 결혼을 하여 세 번째 아내가 있었다. 자매들은 ‘스즈’를 막내 동생으로 받아들이고 그들의 오랜 추억이 살아있는 바닷마을 집에서 같이 살기 시작한다.
온몸을 휘감아 도는 그 느낌을 촉촉하게, 촘촘하게 실은 제대로 된 영화평을 쓰고 싶다만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요즘 내 육체와 정신에게는 거의 불가능한 미션이다. <바닷마을 다이어리>를 특히 강력 추천한 이유는 순전히 장녀 ‘사치’역을 맡은 배우 ‘아야세 하루카’ 때문이다. 맏언니이자 집안의 가장으로 강인하고 인자한 매력을 듬뿍 담아낸 ‘아야세 하루카’는 영화를 보는 내내 이 여자정도면 결혼하고 싶다는 욕망을 불러일으켰다. 아니나 다를까 그녀는 일본에서 ‘결혼하고 싶은 여자 연예인’ 설문조사에서 수많은 여배우들을 제치고 당당히 1위를 고수하고 있다니 보는 눈들은 어디든 다 똑같은 모양이다.
이 다섯 작품을 꼭 감상하여 힐링하고 싶다는 페친 분들은 한편을 선정하여 메시지로 이메일 주소를 남겨주길 바란다. 말만 잘 하면 두 작품도 가능하다. 사실 이 작품들은 합법 영화다운로드 사이트에서 모두 서비스 된다. 네이버 영화 사이트에서는 각 2000원 내외면 다운받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