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 게시판] 네덜란드인 하멜 한국에 오다

1653년 8월 16일 제주도의 네덜란드인

1653년 8월 16일 네덜란드 배 스페르웨르 호가 난파하여 한 섬에 표착한다. 모진 태풍 끝에 살아남은 선원은 36명. 돛으로 텐트를 치고선 비바람을 견디던 그들의 눈에 사람이 하나 나타난 건 다음 날이었다. 역시 세계 바다를 휩쓸고 다니던 네덜란드 선원답게 총을 겨누고 위협한 끝에 불을 얻었다. 그러나 선원 중 하나인 하멜의 기록에 따르면 곧 1천명이 넘는 병사들이 그들을 포위한다. 무인도로 알았던 섬은 제주도였다.

하멜.jpg

하멜의 기록은 꽤 정확하다. 그때 그들이 끌려갔던 ‘대정현’의 이름을 기록하고 있고, 그들을 심문한 제주목사를 ‘Moxso'라고 부르고 있다. 당시 제주목사는 훌륭한 사또로 이름난 이원진. 그로부터 “이교도로부터 기독교인보다도 더 따뜻한” 대우를 받으며 지내던 하멜 일행은 두 달 뒤 뜻밖의 인물을 만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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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에서 벨테브레로 분장한 주한 네덜란드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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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분명한 서양 사람이고 심지어 네덜란드 말을 하되, 세 살 아이처럼 더듬거리면서 말을 하고 있었다. 하멜보다 먼저 표류해 왔던 네덜란드인 벨테브레였다. 꼬박 하루를 넘기면서 잊혀졌던 그의 모국어가 살아났다. 어떤 기록에 따르면 벨테브레는 대화를 끝낸 후 해안에 엎드려 소매가 젖도록 울었다 한다. 하멜 일행은 그를 보며 자신들의 운명을 직감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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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13년 20일이 흘러 하멜 일행은 탈출에 성공한다. 그런데 탈출 후 일본에 도착한 이들은 놀랄만한 조사를 받게 된다. 일본측이 하멜을 상대로 던진 질문들은 방대하고도 빈틈이 없었다. 하멜이 탄 배의 무장 상태부터 제주도에서 서울까지 가는데 걸린 시간과 경로, 조선군의 무장 정도, 교역 현황과 교역 국가와 내용, 현종 연간의 대기근, 하멜 일행이 지급받은 쌀의 양, 광산과 인삼 등 특산물의 산지에다가 지방관의 임기와 현재의 정보기관처럼 세밀한 조사가 이뤄졌고 하멜의 13년 경험은 고스란히 일본에게 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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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조선은 금은이 가득한 환상의 나라로 오인받고 있었다. 영국만 해도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초청한 조선 통신사에게 접근하려고 무진 애를 썼다. . 하지만 하멜의 표류기가 출간되면서 조선은 신비한 나라에서 현실 속 국가로 자리매김된다. 네덜란드 동인도회사는 ‘코리아 호’라는 배 (큰 배는 아니다)를 출범시키는 등 조선과의 교역 의지를 보인다. 그러나 일본측의 반대에 부딪친다. 일본 현지 상인은 이렇게 충고한다. “조선은 가난한 농업국으로 교역의 실익이 없고, (조선과의 무역을 독점하는) 막부가 반대할 것이며, 조선인들도 원하지 않을 것이다.” 하멜의 표류기는 이 권고와 합치하는 것이었고, 동인도 회사는 코리아 호가 침몰된 이후 조선에 대한 관심을 잊는다.

일본이 하멜에게서 조선에 대한 상세한 정보를 긁어모은 동안, 네덜란드 사람 벨테브레가 완연한 조선인으로 살며 모국어를 잊었던 기간 동안, 그리고 하멜이 방문하고 13년을 지내고 탈출하여 제 나라로 돌아가 하멜 표류기를 써서 은자의 나라 조선의 실상을 알리는 기간 동안 조선은 자신의 품 안에 들어온 외국에 대한 정보 탐색에 신기할이만큼 무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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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멜 일행에 대한 기록이라고는 “전에 온 남만인(南蠻人) 박연이라는 자가 보고 ‘과연 만인(蠻人)이다.’ 하였으므로 드디어 금려(禁旅)에 편입하였는데, 대개 그 사람들은 화포(火砲)를 잘 다루기 때문이었다. 그들 중에는 코로 퉁소를 부는 자도 있었고 발을 흔들며 춤추는 자도 있었다.”는 정도.

대관절 이런 둔감함은 무엇 때문이었을까. 하멜의 한 마디에서 나는 그 이유의 단면을 찾는다. “조선인은 성품이 착하고 매우 곧이듣기 잘하는 사람들이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어떤 것이나 믿게 할 수 있었다....그리고 그들은 겁이 매우 많다.”

‘반상의 질서는 영원하고, 존명사대는 천하의 순리’이며 중국 것 이외엔 다 오랑캐에 버러지라고 생각했던 지배층, 그리고 그 세력의 말을 ‘곧이듣고’ 저항하지 않았던 백성들의 합작은 아니었을까.. 살아온 방식에서 벗어나기를 두려워했던 나라는 어떠한 자극과 계기도 깔아뭉개는 속성이 천연덕스럽게 생겨나는 법이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이 이어지는 동북아시아의 격동기에서 지배 세력이 교체되지 않았던 나라는 조선이 유일했다. 1653년 8월 16일 코로 퉁소를 부는 이방인이 은자의 왕국에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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