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 게시판] [과학 에세이] 종 예외주의 (4-1) : 이타적인 종 ; 정의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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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에세이] 종 예외주의 (3) : 이기적인 종에서 이어집니다.
이타적인 종
정의란 무엇인가
위선자 이론
나는 지난 「이기적인 종」에서 “인간의 사회 질서가 동물의 악한 본능을 억제한다”라는 견해를 비판하였다. 사실 동물을 부도덕하고 악(惡)의 상징으로 간주하는 생각의 역사는 뿌리가 깊다. 『창세기』는 카인이 그의 내면에 도사리고 있던 “짐승”에 사로잡혀 아벨을 죽였다고 하였으며, 17세기의 토마스 홉스는 늑대를 인간의 근본적인 잔혹성의 상징으로 삼았다. 20세기에 들어서도,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동물성’을 인간이 본능을 억제함으로써 사회질서로 대체하고 싶어 하는 유산이라 말하였고, 노르베르트 엘리아스는 문명화란 모든 ‘동물적’ 측면을 억압하고 사회생활의 뒷면으로 밀어 넣는 과정이라 하였다.[1]
그리고 이러한 태도는 인간의 폭력성에 대한 주제 뿐 아니라, 인간의 도덕성에 대한 주제로까지 이어진다. 자연적 본성이 이기적이라는 점에 지나치게 감화된 사람들은, 인간의 도덕적 행동이 일종의 위선이라고 주장한다. 이타적인 행동이 사실 타인에게 좋은 인상을 주기 위한 이기적인 행동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들은 사회 질서 속에서 우리가 어쩔 수 없이 가면을 쓰고 살아간다고 말한다.
우리는 때때로 팍팍한 삶에 치여 이 같은 주장에 수긍하기도 하지만, 내 자신의 마음에서 우러나는 진실함에 비추어 볼 때 이는 사실과는 거리가 멀다. 우리는 이미 수많은 익명의 자선가들을 보았으며, 또한 자신의 목숨을 내놓으면서까지 남을 돕는 사람들을 수없이 보았다. 명백히 자신에게 아무런 이득이 없음에도 그들은 자신을 돌보지 않고 남을 도왔다. 갓난아기조차 다른 아기의 우는 소리에 함께 운다. 이제 막 눈을 뜬 아기가 다른 누군가에게 잘 보이기 위해 운다고 생각할 수 있겠는가.
물론 ‘자신’이 ‘개체’ 단위가 아닌 ‘유전자’ 단위라면 설득력을 갖출 수도 있지만, ‘위선자 이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대게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의 표지만을 읽었거나, 자신의 특정한 목적을 위해 자연을 이용할 뿐이다. 특히 그들은 자신의 주머니 문제에 자연을 끌어들이길 좋아한다. 본래 자원의 분배 또는 보상 문제는 사회의 정의 관념과 직결되는 것이지만, 그들은 인간의 도덕성을 위선으로 끌어내림으로써, 자신이 독식한 재산을 자연적인 것으로 정당화한다. 더 나아가, 공격적인 경쟁이 진보를 이끌었다는 ‘적자생존’의 삐딱한 논리를 적용해 경쟁을 새로운 미덕으로 추켜세운다. ‘위선자 이론’은 정의(正義)에서 이타적인 마음을 제거하고 그 빈자리를 이기적인 마음으로 채워 넣는다.
유인원의 분배 정의
하지만, 실지로 자연에서 살아가는 유인원들이 어떻게 분배 정의를 실현하는지 안다면, 그들은 더 이상 자신의 분배 정의가 ‘자연적’임을 항변할 수 없다. 유인원들은 그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힘 있는 우두머리가 먹이를 독차지하고 우두머리의 식사가 끝난 후에야 서열에 따라 먹이를 나눠 먹는, ‘약육강식’의 모습을 하고 있지 않다.
특히 우리와 가장 가까운 친척인 침팬지는 제법 그럴듯하게 먹이를 분배한다. 먼저, 침팬지 사회에서 먹이를 분배하는 주체는 먹이의 소유자이다. 언뜻 너무 당연해 보이는 이 사실은, 으레 우두머리가 모든 것을 소유하고 있으리라는 뭇사람들의 추측과 비교해 볼 때, 꽤 주목할 만한 일이다. 먹이의 소유권은 먼저 점유한 침팬지가 취득한다. 여러 침팬지가 먹이를 동시에 발견한 경우에는 서열에 따라 소유자가 결정되지만, 일단 먹이를 점유한 침팬지는 서열과 관계없이 먹이의 소유자가 된다. 힘으로 먹이를 빼앗는 침팬지는 없으며, 우두머리 수컷조차 조용히 먹이를 분배해주길 간청하며 손을 내민다. 이러한 행동을 학자들은 ‘소유권 존중’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무리의 구성원 대부분이 먹이를 분배 받는 객체가 된다. 소유자는 먹이를 독식하지 않고 나름의 기준으로 먹이를 나눈다. 보통은 먹이 소유자와의 친분 순으로 분배되며, 사냥을 통해 먹이를 얻은 경우에는 사냥에 참여한 동료를 우선하여 분배된다. 이 과정은 생각보다 간단하지 않은데, 털 고르기 같은 정서적 교감, 이전에 받았던 먹이에 대한 보답, 정치적 동맹 관계, 함께 사냥한 동료의 몫 등 여러 사회적 관계가 얽혀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들은 별 관계가 없더라도 먹이를 간청하는 상대를 쉽게 거절하지 못한다. 영장류학자 프란스 드 발은 사냥한 원숭이 고기를 침팬지들이 약 두 시간에 걸쳐 분배하는 과정을 지켜보았다고 증언한다.[4]
요약하자면, 침팬지들의 먹이 분배 기준은 호혜적 관계에 있다. 침팬지들은 서로 먹이를 빼앗지 않는다. 상호 적대 관계를 형성할 단초를 제공하지 않는 것이다. 그들은 자신의 털을 골라주었던 친구, 자신에게 좋은 먹이를 주었던 상대, 혹은 과업을 함께 완수한 동료에게 마음의 빚을 갚고, 또 누군가에게는 먹이를 베풀어 마음의 빚을 지우는 방식으로 먹이를 분배한다. 일견 호혜적 관계는 이해타산적 관계와 비슷해 보이지만 중요한 차이가 있다. 장부의 빚은 갚음으로써 관계를 종료시키지만, 마음의 빚은 갚음으로써 관계를 남기고, 다시 마음의 빚을 상대에게 전가한다. 장부의 빚은 먹이에는 먹이로, 노동력에는 노동력으로 갚지만, 마음의 빚은 친절과 은혜, 협동, 먹이 등 다양한 방식으로 갚는다.
물론 침팬지들도 마냥 침팬지 좋은 자선 사업가는 아니다. 그들도 받을 빚에 대한 기대를 갖고 있으며, 기대의 배신에 대한 실망과 분노를 느낀다. 만약 A 침팬지가 B 침팬지에게 먹이를 크게 베풀었는데, B 침팬지는 A 침팬지에게 적절한 성의를 보이지 않는다면, A 는 실망하고 B 에게는 다시 호의를 베풀지 않을 것이다. 침팬지 사회에서 정 많고 관대한 침팬지가 인색한 침팬지보다 더 좋은 대유인(對類人)관계를 맺고 도움을 받는다는 사실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리고 이는 침팬지 사회의 분배를 더욱 섬세한 작업으로 만든다. 더구나 침팬지들은 다른 침팬지들의 것과 자신의 보상을 비교할 줄 아는 존재들이다. 다양한 호혜적 관계 속에서 누군가 서운해 하지 않을 공정한 분배가 필요한 것이다. 두 시간이나 걸린 원숭이 고기의 분배는 이해할 만한 일이다.
하지만, 감정없이 공정함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을까
공동체의 가치
나는 침팬지들의 모습에서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한 착각을 느낀다. 먹이를 분배하며, “친구야, 우리가 남이냐”, “어르신, 지난번은 감사했습니다”, “여러분, 모두 사냥하느라 수고하셨소”, “아저씨, 이렇게 부탁하면 제가 어떻게 거절을 해요”라고 말을 하는 것만 같다. 혹은 반대로, 분배에 실망한 이들이 “내가 너한테 이것 밖에 안되냐?”, “배은망덕한 놈!”, “사냥 너 혼자 했어?”, “치사하고 쩨쩨한 자식!”이라고 외치는 모습도 상상된다. 침팬지들은 말만 하지 않았다 뿐이지, 너무나 인간다운 반응을 보여준다.
그리고 나는 그들의 분배 방식에서, 여전히 모두가 타인에 의지하고 살지만, 우리가 잊어버린 인간적인 모습을 다시 본다. ‘위선자 이론’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은 분배적 정의를 말하며 개인의 이기적인 타산을 충족시키는 데에만 관심을 갖는다. 배려나 은정을 감상적인 것으로만 치부하고 논하려 하지 않는다. 하지만 침팬지들은 이런 우리들에게, 분배적 정의가 서로의 감정을 다독여 호혜적인 사회관계를 유지시키는 데에 중요한 목적이 있음을 환기시켜 준다. 그들은 정의가 만족한 개인만을 남기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를 함께 남기는 것임을 일깨워 준다.
‘위선자 이론’은, 「이기적인 종」에서 지적하였듯, 자연을 악으로 규정하고 인간의 사회 질서를 인간만의 특징으로 전제함으로써 잘못된 결론에 도달한다. 유인원 사회는 결코 먹이를 놓고 이기적으로 투쟁하지 않는다. 그들은 서로의 소유를 존중하면서도 나름의 방식으로 평화롭게 먹이를 나눈다. 신세 진 이들에게 보답하고 기여자들에게 보상하며 상호 호혜적인 관계 속에 무리의 유대를 강화한다. 유인원이든 사람이든 이타적인 사회는 공동체를 위해 ‘자연’스러운 모습이다. 진짜 자연은, 자신의 탐욕을 ‘자연’으로 정당화하는 자들에게, 오히려 그들의 논리대로라면 사회가 그들을 외면하고 응징함이 정의라고 말한다.
[과학 에세이] 종 예외주의 (4-2) : 이타적인 종 ; 도덕적 동물로 이어집니다.
참고문헌
[1] Begue, L. (2013). 도덕적 인간은 왜 나쁜 사회를 만드는가. 이세진 (번역). 서울 : (주)부키. (원전은 2010에 출판)
[2] Burgess, R., Yang, Z. (2008). Estimation of Hominoid Ancestral Population Sizes under Bayesian Coalescent Models Incorporating Mutation Rate Variation and Sequencing Errors. Molecular Biology and Evolution, 25(9), 1979–1994.
[3] Dawkins, R. (2006). 이기적 유전자(30주년 기념판). 홍영남 (번역). 서울 : 을유문화사 (원전은 2006에 출판)
[4] de Waal, F. (2005). 내 안의 유인원. 이충호 (번역). 경기도 파주 : 김영사 (원전은 2005년에 출판)
[5] Diamond, J. (1996). 제3의 침팬지. 김정흠 (번역). 서울 : 문학사상사 (원전은 1993에 출판)
[6] Diamond, J. (2013). 총, 균, 쇠(개정). 김진준 (번역). 서울 : 문학사상사 (원전은 2003에 출판)
[7] Doker, J.(2012). 고전으로 읽는 폭력의 기원. 신예경 (번역). 경기도 파주 : (주)알마. (원전은 2008에 출판)
[8] Locke, D., Hillier, L., Warren, W., Worley, K., Nazareth, L., Muzny, D., [...] Wilson, R. (2011). Comparative and demographic analysis of orang-utan genomes. Nature, 469, 529-533. doi:10.1038/nature09687
[9] Nater, A., Mattle-Greminger, M., Nurcahyo, A., Nowak, M., Manuel, M., Desai, T. [...] Kru¨tzen, M. (2017). Morphometric, Behavioral, and Genomic Evidence for a New Orangutan Species. Current Biology, 27(22), 3487 - 3498.
[10] Prado-Martinez, J., Sudmant, P., Kidd, J., Li, H., Kelley, J., Lorente-Galdos, B. [...] Marques-Bonet, T. (2013). Great ape genetic diversity and population history. Nature, 499, 471–475. doi:10.1038/nature12228
[11] Williams, J. M., Lonsdorf, E. V., Wilson, M. L., Schumacher-Stankey, J., Goodall, J. And Pusey, A. E. (2008). Causes of Death in the Kasekela Chimpanzees of Gombe National Park, Tanzania. American Journal of Primatology, 70, 766–7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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