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 게시판] [과학 에세이] 양자역학, 경제학, 그리고 진화론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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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자역학, 경제학, 그리고 진화론 (1) 에서 이어집니다.

경제학

경제학은 현재 우리가 누리는 번영을 이루는 데 큰 공헌을 한 학문입니다. 경제학의 논리는 지금까지 훌륭하게 기업들을 키워왔고 경제의 규모를 성장시켰습니다. 아담 스미스, 마르크스, 하이에크, 케인즈 등 경제학 거장들의 이름은 우리에게 무척 익숙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대부분 ‘경제학’에 대하여 잘 알지 못합니다. 경제학 서적은 알 수 없는 용어와 그래프, 수식으로 가득합니다. 경제학은 우리가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는 대상이 되지 못합니다. 우리는 경제학이 전문가의 영역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음은 이에 대하여, 경제학자이자 베스트셀러 ‘나쁜 사마리아인들’의 저자 장하준 교수님의 강연 중 발췌한 내용입니다.

장하준의 모두를 위한 경제학 강의 (영국 왕립 예술 협회)

저는 경제학이 일반인에게는 너무 어렵다는 인식을 바꾸기 위해 노력해왔습니다. 생각해보면 이상한 현상인데, 사람들은 모든 일에 뚜렷한 주관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라크 전쟁, 동성 결혼, 신은 존재하는지, 지구 온난화, 이런 주제에 대해 여러분은 뚜렷한 주관이 있습니다. 신학 학위를 갖고 있지도 않고, 에너지 경제학 학위를 받았거나, 국제 관계학 학위가 있지도 않으면서 말입니다. 그런데 유독 경제학은 전문가들의 영역이고 잘 모르겠다고 합니다. 왜 그렇죠? 국제 관계학 학위 없이도 이라크나 아프가니스탄에 관한 분명한 의견이 있다면, 경제학 학위가 없더라도 정부 정책에 대한 분명한 의견이 있어야 합니다. 이런 현상은 경제학자들이 경제학을 실제보다 훨씬 어려운 학문으로 느끼도록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경제학자들은 본인이 설명은 해줄 수 있지만 여러분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경제학의 95%는 상식적인 이야기입니다. 물론 전문용어나 수학 때문에 어려워 보일 수 있습니다만 너무 깊게 들어가지 않는다면 나머지 5%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누군가가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준다면 말입니다. 예를 들어, 경제학은 무엇이고, 경제학의 윤리적인 바탕은 무엇인지, 여러분이 경제학과 정치학을 분리해서 생각하는지 등 […] 많은 경제학자가 경제학은 과학이고 한 가지 이론만 옳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경제학에는 적어도 아홉 가지 주요 학파가 있고 상세하게 분류하면 숫자는 더 늘어납니다. 학파마다 나름대로 장단점이 있습니다. […] 경제를 제대로 분석하기 위해서는 모든 학파의 이론을 알아야 하는데, 저마다 가정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서로 다른 정치적, 윤리적 가치를 바탕으로 하고 경제 성장의 방법에 대해 각자 다른 이론을 가지고 있습니다.

장하준의 경제학 강의

경제와 정치가 분리가 불가능하다 그런 얘기인데, 그래서 어떤 표현까지 쓰냐면, “Economics is politics”, “경제가 곧 정치다”라는 말까지 씁니다. 아담 스미스나 데이비드 리카도가 경제학을 쓸 때, 경제학의 이름이 ‘economics, 경제학’이 아니라, ‘political economy, 정치 경제학’이라고 했습니다. 그때는 정치와 경제의 분리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러나 20세기 신고전파가 득세하면서 이름을 경제학으로 바꾸고, 경제학은 과학이므로 정치 논리나 도덕적, 윤리적 기준은 배제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며 경제학을 탈정치화된 학문으로 만들려고 많은 노력을 했습니다. 요즘 좌우를 막론하고 많은 사람들이 “정치 논리가 경제에 개입하면 안 된다”고 얘기합니다. 저는 그것이 정말 틀린 얘기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경제가 무엇인지 규정하는 것 자체가 정치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19세기에는 노예 매매, 아동 노동 고용, 공해 물질 배출도 허용되었습니다. 그때는 노예 매매와 아동 노동이 경제의 일부였으니까요. 지금, 누가 노동시장 유연화를 위해 아동 노동을 다시 도입해야 한다는 얘기를 합니까? 이는, 경제의 경계 자체가 완전히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결국은 정치적으로 사람들이 이건 안 되는 것이라고 받아들였기 때문에 바뀐 것입니다. 경제의 경계 자체가 정치에 의해 결정되는데 어떻게 경제 문제에 정치 논리를 개입하지 말라고 얘기하는 것입니까. 그런 이야기를 하는 분들의 본질은 결국 “내 정치 논리는 경제이니 건드리지 말고, 네 정치 논리는 내가 보기에 정치이니 개입하지 말라”이런 얘기입니다. 굉장히 잘못된 생각입니다. 경제가 정치라는 걸 이해하면, 경제 현상이 지진이나 해일처럼 불가피한 현상이 아니라는 것을 이해하게 되는 것입니다.

장하준 교수의 말처럼, 경제학자들은 경제학을 ‘과학'화하여, 일반인이 경제학에 대하여 토론하지 못하도록 장벽을 쌓았습니다. ‘경제학’ 전공자가 아니면 경제학을 논할 수 없다는 인식을 만들어 왔습니다.

하지만 경제학의 기본 가정은 매우 정치적이고, 도덕적이며 윤리적입니다. 경제학은 과학과 다릅니다. 경제학은 당장 공동체가 먹고 사는 문제에 대한 답을 내놓아야 하고, 어떤 가치를 더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는지를 따져야 합니다. 과학처럼 답을 내릴 수 없다면 모르는 채로 결정을 보류할 수 있는 학문이 아닙니다. 경제학은 최대한 현재를 진단하고 미래를 대비해야 합니다. 그리고 여기에는 수많은 개인과 다양한 집단의 이해가 걸려 있습니다. 경제학이 과학이 아닌 이데올로기일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장하준 교수는 경제학에 대한 토론이 민주 시민으로서 가져야 할 의무라고 말합니다.

진화론

진화론은 다윈의N'종의 기원'에서 처음 제기된 생물학의 혁명입니다. 양자역학이 물리학의 혁명이었듯 말입니다. 진화론은 주어진 환경 속에서 복제, 변이, 선택이라는 세 단계를 거치며 한 종이 다른 종으로 변해 간다고 말합니다. 또한 단순한 단백질 분자가 현재의 인류로까지 발전했다고 합니다. 처음 진화론이 발표되었을 당시에는 이 같은 내용은 꽤 충격적이었지만, 지금은 생물학의 정설로서N'진화론'이라고 부르는 것보다,N'진화 생물학'이라고 부르는 것이 더 바람직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앞선 두 학문에 비추어 진화론의 논쟁이 참 이상하다고 느낍니다. 그것은 제가 양자역학의 설명을 마치고 드린 “양자역학을 믿습니까?”라는 질문이 굉장히 어색한 표현인 반면, 진화론은 “믿느냐”라는 질문이 성립한다는 사실에서 비롯됩니다. 과학이론은 일반인이 믿고 말고 할 대상 아닙니다. 아무도 양자역학이 상식에 어긋난다고 따져 묻고 대체할 가설을 제시하지 않습니다. 분명 ‘경제학'도 사람들이 ‘과학’으로 생각해 토론의 대상으로 삼지 않는다 하였습니다. 진화론 논쟁에 이상한 점이 느껴지십니까?
장하준 교수님의 표현을 빌려 대구를 맞춰 보자면,

양자역학, 상대성 이론, 전자기학, 천문학 이런 주제에 대해 여러분은 아무런 의견이 없습니다. 물리학 학위를 갖고 있지도 않고, 전자공학 학위를 받았거나, 천문학 학위가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유독 진화론은 전문가가 아니어도 자신의 견해가 있다고 말합니다. 왜 그렇죠? 물리학 학위 없이 양자역학에 도전할 수 없다면, 진화생물학의 학위가 없이 진화론에 도전할 수 없어야 합니다.

진화론 논쟁은, 경제학자가 ‘정치’인 경제학을 ‘과학'화 시킨 것처럼, 종교인이 ‘과학’인 진화론을 ‘정치'화 시킨 결과물입니다. 최근에는 ‘창조론’이라는 단어 대신 과학처럼 보이도록 ‘지적설계론’이라는 단어를 사용 한다던지, “진화론을 일부 인정하지만~”으로 시작하며 마치 합리적인 중재자처럼 견해를 밝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자신은 종교와는 아무 관련이 없다고 항변하면서 말입니다. 그들은 진화론이 비상식적이어서, 학자들 사이에 말이 달라서, 설명하지 못하는 부분이 많이서 믿을 수 없다고 합니다. 하지만 애초에 과학이란 전문 지식 없이 ‘상식’을 기준으로 논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닙니다. 양자역학이 너무 작은 공간에 대한 기술인 탓에 ‘비상식적’인 것처럼, 진화론은 너무 긴 시간에 대한 기술인 탓에 ‘비상식적’입니다. 누구도 진화가 일어나는 시간을 산 사람은 없습니다. 당연히 비상식적입니다. 또한 과학자 간에 견해가 일치하지 않고, 내용이 바뀌고, 불완전한 것도 다른 모든 과학이론이 마찬가지입니다. 유독 그러한 이유로 믿지 못하겠다는 과학 이론은 진화론 밖에 없습니다. 결국 진화론 논쟁은 종교가 만든 ‘정치'화 된 구도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당사자는 종교인이 아니더라도 종교인들이 만든 덫에 빠져 ‘진화론’을 마치 상식선에서 생각할 수 있는 것인 양 믿게 된 것입니다.

만일 진화론을 비판하고 대안이론을 제안하고자 한다면, 최소한 두 가지 중 하나는 선행되어야 합니다. 생물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논문을 게재하거나, 진화론이 과학이론이 아닌 이유를 밝혀 내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그 대안이라는 것은 잘해야 공상 정도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리고 제가 보기에는 전자가 후자에 비해 훨씬 쉬워 보입니다.

마치며

저는 진화론 논쟁 자체에 잘못된 점이 있고, 그 원인으로 종교를 지목하였습니다만, 이것이 무작정 종교를 비판하기 위함은 아닙니다. 저는 이 진화론 논쟁을 시대가 남긴 자연스러운 유물 정도로 생각합니다. 인류는 지난 역사의 대부분을 철학과 과학, 종교가 분리 되지 않은 채 살아 왔습니다. 철학자가 과학자였고, 신학자였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우습지만, 갈릴레이가 지동설을 주장하고 종교 재판에 회부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데카르트가 관성의 법칙을 주장할 때 그 원인을 신의 권능에서 찾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사진을 찍으면 영혼이 빠져나간다던 시대가 있었습니다. 물에게 칭찬을 해주면 예쁜 결정을 맺는다는 주장을 믿던 시대가 있었습니다. 시대가 변하여 과학이 철학이나 종교와 분리되어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해 나간 것입니다. 다만 ‘과학’의 짧은 역사 탓에, 아직 ‘과학’이란 무엇인지 대중의 인식이 부족한 상태일 뿐입니다. 앞으로 과학과 과학이 아닌 것의 구분이 명확해 질수록, 진화론 논쟁과 같이 바람직하지 못한 논쟁은 점차 줄어들 것입니다.



다섯 줄 요약

가만보니 글을 읽기에 바쁜 분들이 많아 보여 요약해 봅니다.

  1. 진화론 논증의 내용이 아니라, 진화론 논쟁 자체에 의문이 생김
  2. 양자역학 설명은 페이크. 이 어렵고 말도 안되는 학문에 일반인은 아무도 논쟁하지 않음
  3. 경제학은N'정치'임에도N'과학'화 되어 일반인이 논쟁하지 않음
  4. 진화론은N'과학'임에도N'정치'화 되어 일반인이 논쟁함
  5. '과학'의 짧은 역사 탓에 아직 과학에 대한 대중적 인식이 부족하여 일어난 현상으로 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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