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 게시판] 전함 포템킨의 반란
- Work4Block
- 0
- 2,499
- 0
- 0
- 글주소
- 08-15
1905년 6월 27일 포템킨 호의 반란.
시작은 1905년 1월이었다. 세계 최대의 영토를 자랑했지만 그 백분지 일 정도 되는 동양의 섬나라 일본과의 전쟁에서 판판이 깨져 나가고 있던 러시아의 민중들은 부글부글 끓고 있었다. 굴욕감도 굴욕감인데다가 전쟁에 따르는 부담은 가뜩이나 경제적으로 피폐한 러시아 민중들의 삶을 기아 선상으로 몰아넣었던 것이다. 그러나 황제에 대한 존경심과 신뢰를 잃지 않고 있던 민중들은 한 신부의 주도 하에 황제의 초상화를 들고 가두를 행진해 나갔다. “신이여 짜르(황제)를 보호하소서” 노래를 부르는 시위대에 러시아 제국 군대와 경찰은 일제 사격을 가했고 수백 명의 피가 얼어붙은 거리를 녹였다. 이른바 ‘피의 일요일’ 사건.
.
이후 러시아는 걷잡을 수 없는 소용돌이에 휘말렸다. 그 가운데 짜르 정부를 경악케 만든 사건 하나가 흑해 함대 소속의 한 전함에서 터져 나왔다. 전함의 이름은 포템킨.
수병들이 선상반란을 일으켜 배를 장악한 후 혁명의 기치를 올린 것이다. 그들은 총파업이 진행 중이던 오뎃사로 배를 몰았고 시민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는다. 하지만 정부군의 반격이 시작됐고 수많은 시민들이 희생당하게 되는데, 이 전함 포템킨의 이야기를 세르게이 에이젠슈타인이 영화로 만든 것이 불멸의 흑백 영화 <전함 포템킨>이다. 이 영화에서 에이젠슈타인이 사용한 몽타쥬 기법은 전함 포템킨의 반란만큼이나 혁명적인 편집 기법이었다. 정부군에게 맞아 쓰러진 엄마의 손에서 놓여난 유모차가 계단을 구르는 ‘오뎃사의 계단’ 장면은 영화 <언터처블>을 비롯, 수많은 영화에서 다시 쓰이게 되는 것이다. 이 전함 포템킨의 반란의 서막이 포성처럼 오른 것이 1905년 6월 27일이었다.
태산명동(泰山鳴動)에 서일필(鼠一匹)이라고, 천지를 뒤흔드는 사건이 알고 보면, 또는 까발려 보면 별 것 아닌 것으로 판명되는 경우도 많지만, 역으로 아무 것도 아닌 문제가 태산을 무너뜨리는 일도 흔하다. 즉 큰 방죽도 개미 구멍으로 무너지는 것이다. 전함 포템킨 사건의 발단은 반란 전날 보급된 고기에서 비롯됐다. 보급 당일 날이 어두워 제대로 확인하지 못했던 고기는 다음날 그 썩은 내와 드글거리는 구더기로 병사들을 경악시켰다. "썩은 고기다."
"구더기가 드글거리는 고기가 보급품으로 왔다."는 소문은 삽시간에 선내를 뒤덮었다. 병사들의 동요를 감지한 함장 골리코프는 군의관 스미르코프에게 고기에 대한 검사를 명령했다. 역사에서는 가끔 전혀 주연급이 아닌 단역 배우의 돌출 행동 때문에 전혀 다른 흐름이 형성되는 일이 종종 벌어지는데 바로 전함 포템킨에서 그런 경우가 발생한다. 검사 후 스미르코프의 대답은 천만뜻밖이었던 것이다.
"괜찮습니다. 식초로 구더기를 씻어낸 뒤에 먹으면 아무런 관계 없습니다."
그로부터 22년 전 1882년의 조선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13개월째 급료를 받지 못하던 군인들에게 한 달분의 쌀이 지급됐고 아쉬우나마 반색을 하고 수급 장소인 선혜청으로 달려간 군인들에게 주어진 쌀은 모래와 겨가 반인 쌀이었다. 이때 선혜청의 지급 실무자는 선혜청 당상 민겸호의 하인이었다. 이때 민겸호의 하인이라는 역사상 단역 중의 단역 배우는 ‘불순한 언동’으로 병사들을 격동시킨다. 모르긴 해도 아마 이런 투가 아니었을까. “거 받기 싫으면 다시 쌀 쏟아붓고 가. 이건 뭐 줘도 난리니. 배가 불렀구만 아주.” 이에 격동한 군인들은 민겸호의 하인을 밟아버렸고, 자기 하인을 때린 놈들 다 죽여 버리겠다는 민겸호의 호통을 듣고는 칼을 들었다. 임오군란이었다.
1905년의 포템킨으로 돌아와서, 군의관 스미르코프가 무슨 생각으로 그런 말을 했는지는 모른다. 이른바N'아랫 것들'인 하급 병사들에게는 이런 고기라도 감지덕지하다고 여겼는지, 정말로 의학적으로 썩은 부분만 도려 내면 별 이상이 없는 고기였는지는 알 길이 없다. 그러나 수병들은 이 고기로 만든 수프 먹기를 거부했다. 이 소식을 들은 함장은 다시 한 번 스미르코프에게 묻는다. “고기 수프 문제 없는 건가?” 스미르코프는 또 한 번 함장에게 답한다. “괜찮습니다.”
식사 스트라이크에 함장은 예민하게 반응한다. 함장은 전 병력을 갑판에 집합시키고 수프를 먹을 자는 앞으로 나서라고 말한다. 이에 몇 명은 발을 움직이지만 나머지는 침묵으로 거부 의사를 밝힌다. 그러자 함장은 "고기를 재검사할 것이지만 이 사태를 함대 사령관에게 보고하고 너희들에 대한 처분을 기다리겠다."고 선언한다. 이 정도에서 그쳤으면 괜찮았을지도 모르는데 부함장이 조선의 민겸호 역할을 하는 사고를 친다.
부함장 길리아로프스키가 "원위치 재정렬! 방수포를 가져오라!"고 명령한 것이다. 러시아 해군에는 총살 전에 수형자에게 방수포를 씌우는 전통이 있었던 바, 이것은 총살을 예고하는 위험한 명령이었다. 방수포가 대령한 상황에서 부함장은 고기 먹을 자 앞으로 나오라고 외치지만 그래도 수백 명이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자 부함장이 위병들에게 발포 준비를 명령했고 이는 정 반대의 신호탄이 되었다. 바쿨린추크라는 이름의 수병이 발포 명령에 항의하며 총을 들자 장교들이 그를 쏘았고, 그가 쓰러지자 병사들은 그대로 분노의 불덩이들이 되어 버렸다. 전함 포템킨 내에서 일어난 작은 혁명이었다.
포템킨 호의 수병들이 굶어서, 배가 고파서 봉기했을까? 아니다. 그들로 하여금 방아쇠를 당기게 한 것은 굶주림이 아니라 인간이 인간에게 베푸는 모욕감이었다. 사실 고기는 썩은 부분을 도려내면 먹을 수 있다. 하지만 "식초로 씻어 먹으면 된다"고 간단하게 얘기하는 군의관과 "어쨌건 식사를 거부하니 단체행동이고 불법"이라고 우겼던 장교들은 병사들을 자신들과 같은 사람으로 보지 않고 있었다. 승리를 위해서라면 죽으라면 죽는 시늉을 해야 하는 아랫 것들일 뿐이었다. 감히 밥을 먹지 않고 명령에 불복한다면 본보기로라도 몇 명 총알밥을 만들어야 하는 졸병들일 뿐이었다. 13개월 동안 월급을 주지 않은 건 차치하고, 한 달치를 줬으면 감사히 받아야지 건방지게 내 하인을 두들겨 팬 놈들을 죽여 버리겠노라 나대던 민겸호와 포템킨의 장교들은 기본적으로 다를 바가 없었다.
거의 항상 그랬다. 오랜 시간 어떤 이들은 방수포를 대령하라 또는 주리를 틀라 외쳤고 그 방수포와 주리 형틀 밑에서 또 다른 사람들은 피분수를 뿜으며 죽어갔다. 하지만 1905년 6월 27일의 포템킨에서는 그렇지 못했다. 식초로 씻어 먹으면 구더기 따위 문제 없다던 군의관은 벌집이 되고 난자당한 채 바다에 던져졌고, 함장과 부함장은 방수포도 쓰지 못한 채 총살당했다.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마태복음 7장 12절)는 말씀은 항상은 아니지만 때로 처절하게 진리다.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않고 돈벌이의 도구나 이윤 창출을 위한 장기판의 말로 취급하는 이들, 남의 생존이야 어찌되든 말든 땅값 올리고 개발 들어가서 떼돈 벌기에 여념이 없는 이들의 오늘이 영화로울지언정, 그 행동에 상응하는 대접이 언제 출몰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전함 포템킨의 장교들도 1905년 6월 27일 자신들의 몸에 구멍이 뚫릴 때까지 그날이 무슨 날인지를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