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 게시판] 잡다한 역사이야기 25편 - 왕씨냐? 신씨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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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eesa224입니다. 오늘은 잡다한 역사이야기 25편 출생의 비밀에 대해서 알아보려고 합니다 ㅎㅎ
때는 고려말 공민왕시기로 가보시죠. 공민왕은 원래 원나라에서 생활하다가 원나라의 필요로 인해 고려왕으로 즉위한 케이스 입니다. 어찌보면 원나라의 꼭두각시가 되어야하는데, 특이하게도 고려의 마지막 불꽃을 태우는 왕이되죠.
공민왕과 노국공주의 초상화로 알려진 그림입니다.
그리하여 원나라 세력을 몰아내고, 고려의 개혁을 어느정도 추진하는데, 밖으로는 원나라와 왜구의 침입이 그리고 내부에서는 고려의 권문세족들의 반발로 어마어마한 위기를 매번 겪게됩니다. 그러나 어느정도 개혁이 성공했을무렵 정말로 아끼고 사랑했던 노국공주가 아이를 낳다가 죽는 사건이 벌어집니다.
노국공주는 원나라공주로서 몽골족 출신입니다. 둘은 정말 사랑했다고 전해집니다.
그후 공민왕은 완전히 타락해 버립니다. 개혁의 불씨도 꺼져만 가는것 같았죠.
신돈의 등장
신돈하면 제일 유명한 짤방..... 드라마 신돈에서 손창민씨의 표정이 너무 절묘해서 나온 짤방입니다.
그러나 공민왕이 완전히 정신줄을 놓아버린건 아니어서 자기가 직접나서기 보다는 새로운 세력에게 힘을 실어주기로 마음먹고, 별다른 연고도 없고, 천한 노비 출신 중이었던 신돈이라는 인물을 발탁하여 전권을 주고 개혁을 펼치게 됩니다. 신돈은 중에서 환속하여 머리도 기르고 관직에 올라서 개혁을 주도해 나갑니다. 뜬금없는 등장과 뜬금없는 개혁에 권문세족도 당황했지만, 결국 신돈도 타락하여 부패했고, 바로 고발이 들어가 별다른 변명도 못해본채 처형당했다고 하니... 최후가 참 안타깝습니다.
신돈의 여자, 왕의 여자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됩니다. 신돈은 중이었다가 다시 환속했기 때문에, 부인도 들이고 여러 여자를 거느렸다고 전해집니다. 그러던 어느날 공민왕이 신돈의 집에 놀러갔을때 한 여인을 보게 됩니다.N'반야'라고 전해지는 여인을 보고 공민왕이 홀딱 반해버린것이죠. 그렇게 반야와 관계를 맺고나서는 반야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게 됩니다.
공민왕은 그동안 자식이 없었기 때문에 이 아들이 유일한 아들이었고, 공민왕은 신하 이인임을 불러다가 이 아들이 자신의 아들이라고 직접 말하게 됩니다.
몇년전 드라마 정도전에서 이인임 역으로 열연하셨던 박영규씨. 정말 무시무시했어요.
물론 이 증언은 오직 공민왕과 이인임만 알고 있었고, 훗날 공민왕이 시해되어 이인임이 전권을 잡고, 우왕 즉위를 밀어붙였을때 나온 이야기라 실제로 있었던 일화인지 아니면 이인임이 꾸며낸 말인지는 확인 할수가 없습니다.
공민왕의 최후와 우왕의 즉위 그리고...
공민왕은 신하들에게 끔찍하게 살해당하는데요. 그후 당시 최고 권력자였던 이인임이 전권을 잡고, 우왕즉위를 밀어붙입니다. 원래 신돈이 처형 당했을때, 반야와 어린 우왕 역시 죽임을 당할뻔했지만, 공민왕이 미리 빼서 보호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우왕을 위의 일화를 들먹이며 이인임이 즉위시킵니다.
어렸던 우왕은 처음에는 어느정도 의욕이 있었으나 워낙 이인임을 비록한 권문세족세력이 막강하여 금방 타락하고, 막나가는 생활을 합니다. 그러나 그때마다 우왕에게 간언하는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최영 장군이었습니다.
후대의 상상화 입니다.
우왕은 최영과 함께 이인임을 제거하고 다시 시작할 생각을 품게되고 넌지시 이 뜻을 최영에게 전합니다. 최영은 우왕의 뜻을 받아 이인임 세력을 제거하기로 마음먹고 사람을 끌어들이기로 합니다. 바로 자신과 함께 전장을 누볐던 동료 이성계를 말이죠.
남아있는 태조 이성계의 어진입니다. 떡벌어진 어깨가 강골 무장 같아 보이지 않습니까? ㅎㅎ
최영과 이성계는 당시 고려 최고의 무장이었기때문에 순식간에 군사를 동원해서 이인임 세력을 날려버립니다. 비록 이인임자체는 최영과 이인임의 친분으로 인해 귀양가는 선에서 마무리 되어 최영이 좀 욕을 먹었지만 어찌되었건 순식간에 고려의 권력이 최영과 이성계에게 집중됩니다.
그후 최영과 이성계의 사이는 위화도 회군으로 끝장이나고, 결국 최후의 권력자는 이성계가 됩니다.
이성계와 신진사대부, 두 왕을 폐하다
우왕은 위하도 회군 직후 쫓겨납니다만, 이성계가 잠시 머뭇거린 사이 다른 세력이 우왕의 아들을 옹립해서 창왕으로 세웁니다. 이성계와 신진사대부가 한방 먹은 셈이었죠. 그러나 칼을 들고 있는 이성계에게 덤빌 세력은 없었습니다. 곧바로 이성계는 창왕도 쫓아낼 생각을 하게되죠.
못 덤빌것 같습니다 ㄷㄷㄷ
그리하여 개성의 흥국사에 이성계 세력이 모입니다. 그중에는 정몽주도 껴있었죠.
충신의 대명사 정몽주도 이때는 이성계와 친했습니다. 정도전보다도 이성계와의 인연이 오래되었죠.
그리하여 창왕의 폐위가 결정되는데, 그 명분이 바로 폐가입진이었습니다. 즉 우왕과 그의 아들 창왕은 왕씨가 아니라 신씨라는 논리였죠. 가짜를 폐하고 진짜를 세운다는 의미였는데, 이성계 세력이 워낙 고려를 꽉잡고 있어서 였을까요? 아니면 우왕과 창왕이 실제로 신돈의 아들이라는 소문이 워낙 많이 퍼져서였을까요? 별다른 반발없이 이 일이 일사천리로 진행됩니다. 그리하여 이 두명은 왕씨가 아닌 신씨로 격하되어버립니다.
그래서 공민왕이니 고종이니 태종이니하는 묘호 없이 그냥 이름을 가져다가 우왕, 창왕이런명칭이 붙게 됩니다. 마치 훗날의 연산군, 광해군 하는것처럼 말이죠.
그럼 진짜 신씨였나?
그 둘이 과연 신씨였을까요? 정말 신돈의 후손이었을까요? 그건 아무도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가 알수 있는건 승자의 기록인 조선의 고려사를 통해서만 알수 있죠. 그러나 어찌되었건 이 소문은 당시 고려에서는 신빙성있게 받아들인것 같습니다. 다 공민왕이 자초한 일이었지요. 새로운 왕조를 꿈꾸는 신진사대부와 이성계에게 이와 같이 좋은 명분은 없었기 때문에 공양왕으로 갈아치우고 조선을 열수 있었습니다.
증인이라고는 신돈과 공민왕, 이인임뿐이었지만, 다 말로만 전해들었을뿐 진실은 아무도 모르는 것이죠. 유해나 무덤이 진짜 남아있다면 실제로 검사해서 맞춰볼수도 있을텐데 말이죠.
프랑스에서는 이렇게 유전자 검사로, 나폴레옹과 나폴레옹 3세가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것을 증명했습니다.
흔히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승자가 기록할때 패자를 깎아내리는 기록도 서슴치 않고 하는데, 조선 건국의 명분으로 우왕과 창왕을 어거지 신씨로 만든것 아니냐 라는 의심도 있습니다. 그러나 당시 기준으로 봤을때도, 공민왕과 특히 이인임이 사람들의 의심을 사게 만들정도로 뜬금없이 우왕이 즉위했기때문에 -아무 증인도 없이 단둘만이 알고 있는- 이성계가 훗날 폐가입진을 들고나왔어도, 그러려니 했던것 같습니다.
한국사의 미스테리 중 하나인 우왕,창왕 신씨 음모론. 현재 고려 왕의 무덤들은 대부분 북한에 남아있으니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검사로 밝혀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