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 게시판] 9백만 죽음의 시작 - 제1차 세계대전

1914년 7월 28일 9백만 죽음의 행진의 시작

전쟁을 통해 돈을 벌려는 인간들이나 전쟁으로 인한 이익을 챙기려는 욕심꾼들, 공훈을 세워 출세하려는 미치광이 군인들을 제외하면 전쟁을 좋아하는 이는 없다. 아니 앞서 말한 부류들도 속내는 어떨지 몰라도 겉으로 "나는 전쟁을 좋아한다."고 뻗대는 이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아이러니컬한 것은 전쟁의 서막은 대개 열광적인 환호와 열화와 같은 지지의 퍼레이드로 장식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영화N'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 즐거운 파티 뒤끝에 전달된 "링컨씨의 군대 소집령"에 남부 청년들이 "전쟁이다!"를 연호하며 광분하는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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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4년 7월 28일은 그 해괴한 열정의 극한을 열어젖힌 날이었다. 그로부터 딱 한 달 전, 1914년 6월 28일 오스트리아의 황태자가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도 말썽 많은 도시 사라예보를 방문했다가 총을 맞아 죽는다. 범슬라브주의에 경도된 세르비아 청년의 소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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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 군 검열관을 겸했던 황태자는 새로이 합병한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주둔 오스트리아 군의 훈련 상태를 점검할 목적으로 사라예보를 방문했다. 그러나 상황은 그리 한가하지 않았다. 황태자가 훈련 상태 검열을 하고 그 정연함을 치하하고 병사 몇 명에게 훈장 달아주고 돌아올 분위기는 도저히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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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르비아인들은 자신들의 영토라고 생각하고 있던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를 오스트리아가 집어삼킨 것에 극도로 분노하고 있었다. 하필이면 날짜도 좋지 않았다. 6월 29일은 일찍이 1389년 세르비아 국왕 이하 10만 대군이 오스만 투르크와 영웅적으로 싸우다가 전멸했던 코소보 전투 기념일이었다. 이후 코소보 평원은 세르비아의 성지가 되었다. 그 역사적 기억은 20세기 후반의 코소보 사태 (코소보 지역의 알바니아계 주민들이 독립을 선언하자 세르비아가 이를 무력으로 진압한)를 낳을 정도로 뿌리 깊은 것이었다. 6월 29일, 하필이면 코소보 세르비아 민족주의가 최고조에 달하던 코소보 전투 기념일 이브에 오스트리아 황태자는 유럽의 화약고 발칸 반도에 발을 디딘 셈이다.

원래 황태자 부부는 오스트리아 황실 내에서 왕따에 가까운 대접을 받고 있었다. 황태자비 소피는 본래 황태자비 물망에 오른 귀공녀의 시종이었다. 그런데 황태자가 난데없이 시종을 사랑한다며 결혼하겠다고 나서자 황실은 발칵 뒤집힌다. 꿋꿋이 사랑을 고집하는 황태자를 어찌할 수가 없어 결혼은 시켰지만 소피는 황태자비 호칭을 쓸 수 없었고, 공석에도 함께 나설 수 없다고 못이 박혔다.

황태자가 사라예보에 초청되었을 때 황태자는 황태자비를 동반할 것을 고집한다. 결혼 후 한 번도 남편 옆에 서지 못했던 아내에게 주는 선물이었다고나 할까. 소피도 뛸 듯이 기뻐하며 남편의 뒤를 따른다. 그리고 그들의 행복한 동행은 끔찍한 결말로 끝난다. 암살자의 첫 번째 총탄으로 치명상을 입었지만, 두 번째 총탄 앞에서 소피는 남편을 보호하고자 남편을 감싼다. "우리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거죠?"라고 울먹이면서. 잠깐 정신을 차린 황태자는 황태자비의 시신 앞에서 "소피! 죽지 말아. 우리 아이들을 위해 죽지 말아!"라고 절규하지만 그 역시 1시간 내에 사랑하는 아내 곁으로 떠나고 만다.

비명에 간 황태자 부부의 소식이 전해진 뒤, 오스트리아는 눈에 가시같던 세르비아를N'조질'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그들은 세르비아에 모든 반 오스트리아 단체를 해산하고, 암살에 관련된 모든 자를 처벌하고, 반 오스트리아적인 모든 관리를 축출할 것을 요구하는데 세르비아는 이 모든 요구를 수용한다. 하지만 마지막 요구만은 받아들이지 못한다. 이 요구는 "위 3항을 조사할 오스트리아 관리의 입국을 허락하라."는 것이었다. 즉 니들은 바지저고리나 꿰매든지 말든지 보릿자루를 꾸어오든지 말든지, 이 사건은 우리가 수사하고 우리가 처벌하겠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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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권국가로서의 최소한의 자존심으로 세르비아는 이를 거부했지만 4항을 받아들였더라도 전쟁은 예정되어 있었다. "이 기회를 우리가 놓친다면 우리 제국은 제 민족들의 야망의 폭발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정치적 이유에서라도 우리는 전쟁을 해야 한다." (오스트리아 군 원수 회첸도르프)

1914년 7월 28일 오스트리아 헝가리 제국은 세르비아에 선전을 포고한다. 슬라브의 맹주를 자처하는 러시아 제국이 냉큼 전쟁을 부르짖었고, 러시아와 긴밀한 동맹 관계에 있던 프랑스가 끼어들고 오스트리아의 게르만 형제국 독일도 전쟁을 선언한다. 영국도 독일이 중립국 벨기에를 침공하자 곧바로 전쟁 카드를 편다. 소름끼치도록 재미있는 것은 런던에서도, 비인에서도, 파리에서도, 베를린에서도 모스크바에서도 군중들이 모여서 만세를 부르며 환호한 것이다. "파리로 쳐들어가자." 베를린의 군중들은 외쳤고 나라에 따라 그 도시가 바뀌었을 뿐, 민족주의의 광분 속에 전쟁의 참혹함의 기억은 실종됐다. 독일 사회민주당마저 정부의 전시국채 발행에 동의했다. 115명의 대표 가운데 단 11명만이 거부 의사를 표했으나 결국N'당론'에 따르기로 동의했고 칼 리프크네히트만이 끝까지 거절했을 뿐이었다.

젊은이들은 우렁찬 팡파르와 군중의 환호 속에 철모를 쓰고 군복을 입고 집결지로 향하는 열차에 탔다. 그 얼굴들은 밝았고 해적같은 영국놈, 주정뱅이 프랑스놈, 오리새끼같이 걷는 독일놈, 곰같은 러시아놈, 돼지같은 오스트리아놈들을 단숨에 무찌르고 전리품 그득히 챙겨 집으로 돌아올 꿈에 부풀어 있었다. 전쟁 발발을 돌이키던 윈스턴 처칠의 말은 그 치명적인 장밋빛 분위기를 잘 묘사하고 있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세계가 고통 받기를 원했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환호작약 승리를 향해 달려나갔던 젊은이들 가운데 태반은 집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석 달이면 끝나리라던 전쟁은 4년을 끌었고 9백만의 목숨을 앗아갔으며 몇 개의 제국을 무너뜨렸다. 전 유럽, 그리고 그들의 식민지 청년들까지 잔뜩 끌어들인 진흙탕 수렁같은 전쟁 속에서 거의 모든 지구의 인류는 오스트리아 황태자 부처의 절규를 곱씹어야 했다. "우리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거죠?" 그리고 "제발 살아줘. 우리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살아 줘."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머지않아 깨달았지만 살아달라는 소망은 그렇게 원만하게 이루어지지 못했다.

전쟁은 그런 것이다. 시작은 창대하나 끝은 참혹하다. 영화 <고지전>의 인민군 장교의 말처럼, "처음에는 왜 싸웠는지 알았지만 지금은 왜 싸우는지를 잃어버리게" 된다. 연평도 사태 당시 어떤 이는 "3일만 참으면 된다."면서 기염을 토했다. 그 잘난 얼굴이 한껏 일그러져 보이고 침을 뱉고 싶어지면서도 더럭 겁이 나는 것은 한 번 더 그런 식의 사태가 터진다면 나부터 독일사회민주당 의원이 될 것 같은 불길한 예감 때문이다. 이 젊은이들은 거의 살아서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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