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 게시판] 이 하나의 장면, 영화 속 명장면 철학 읽기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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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씬 : 라이언 일병 구하기(Saving Private Ryan, 1998)

  • 감독 : 스티븐 스필버그
  • #장면 : 라이언을 구하러 가는 특공대원들의 대화
  • 주제 : 인류를 유지하는 힘
    (*본 내용은 같은 영화의 여러 장면을 소개할 수 있음)

누구나 한 번쯤 제목은 들어봤을 법한 <라이언 일병 구하기>는 전쟁의 참상을 충격적으로 까발린 노르망디 상륙 씬을 제시한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역작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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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위님, 질문 있습니다. 왜 8명이 1명을 구하러 가야하는 거죠?”


세 아들의 전사통보를 하루아침에 받게 될 라이언 일병의 어머니를 위해, 군은 마지막 남은 막내아들인 라이언을 구출하기로 결심한다. 특수임무를 수행 중이던 밀러 대위의 특공대팀이 라이언 일병 구출작전에 투입되게 되고, 밀러 대위는 길을 떠나는 중에 레이번의 질문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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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 답을 아는 사람?”


농담처럼 던지는 말이지만 이는 영화 속의 인물들에게나 관객들에게나 모두 던지는 질문이다. 사지나 다름없는 적진 한가운데 고립된, 살아있는지도 모르는 불확실한 목표를 위해 확실한 8명의 목숨을 거는 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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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놈 엄마를 생각해봐”


레이번의 말에 대답하는 웨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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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엄마 있어, 여기 엄마 없는 사람 있어? 대위님도 엄마가 계실걸?"


4명의 전사통보를 받게 될 라이언 일병의 어머니의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겠지만, 사실 레이번의 말에도 딱히 반박할 여지는 없다. 한 사람의 고통이 조금 더 클 것이라고 해서, 다른 사람의 고통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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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략)대위님이 저라면 어떻게 생각하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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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략)“이건 정말 멋지고 가치 있는 일입니다. 최선을 다해 충실히 임하겠습니다. 더욱이 라이언 어머니께 위안을 드릴 수 있으니 기꺼이 나와 내 동료의 목숨을 바치겠습니다. 특히 네 목숨 말야 레이번.”


사실 밀러 대위라고 부하들을 사지로 내모는 것이 좋을 리가 없다. 하지만 두 가지 이유에서 그는 이 임무를 수행해야만 한다. 먼저 군인으로써 그 책무를 다하기 위해서다. 군인은 상부의 명령에 복종하는 상명하복의 원칙을 따른다. 하기 싫은 임무라고 해서 피할 수 있다면 군의 근간 자체가 흔들리는 것이다. 누군가는 억지로 하고, 누군가는 하기 싫다고 해서 하지 않을 수 있다면, 형평성이 어긋나게 된다. 여러 사회문제들이 결국 이 문제가 기반이 되는 경우가 있지만, 대부분 이것들이 잘 지켜지고 이를 규제할 법과 강제할 공권력이 존재하기 때문에 사회가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소크라테스의 그 유명한 “악법도 법이다”라는 말은 여기에 기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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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 짓는 호바스 상사


두 번째는 앞서 <스워드피시> 편에서 말했던 공리주의의 함정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다. 다수를 위해 하나의 희생이 정당화 된다면, 아이러니하게도 각 개개인은 궁극적으로 개인주의에 함몰되고 만다. 이익이 되는 일이 아니면 나서지 않으며, 또 어떤 행동을 취했을 때 돌아오는 것에 대한 막연한 기대심리도 없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에서의 단체 행동이라는 것은 자신의 안위를 위한 방어적 차원일 뿐, 어떠한 이타심이나 배려를 기대할 수 없다.

그러나 밀러 대위의 일화가 전장에서 고군분투하는 병사들과 그의 가족들에게 전달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자신이 홀로 고립되었어도, 혹은 자신의 가족들이 사지에 내몰렸어도, 구원받을 길이 있다는 믿음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바로 이 믿음이 잔혹한 인류사 속에서도 인류를 유지한 힘이다. 이타적인 사람들에 의한 ‘최악의 상황을 오지 않을 것’이란 믿음은 그 자체로 힘겨운 삶을 이겨내게 만든다. 비록 세 아들을 잃었지만 막내아들이나마 살아 돌아온다면, 라이언의 어머니는 삶을 이어갈 최소한의 이유쯤은 남겨둘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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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부분은 맘에 들어.”


짙은 죽음의 그림자 속에서 이들이 웃을 수 있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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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이 자신의 목숨을 걸 수 있는 이유는 그들의 행동이 종래엔 그들에게 되돌아오기 때문이다. 또 그들 또한 지나간 역사 속에서 초월적인 선택으로 목숨을 바친 사람들에게 빚을 지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적어도 희생으로 이룩된 사회에서 그 덕을 조금이라도 보았다면, 혹은 그 자유를 누렸다면 거기에 대한 자동적인 의무가 생긴다. 설령 의무가 아니더라도 인간은 늘 미래를 살아가므로, 현재 자신의 행동에 대한 책임이 생긴다. 만일 이들이 임무를 회피해도 그 자리를 다른 사람이 해냈다면 이들의 남은 삶이 어떨까. 떳떳한 죽음과 비열한 삶 속에서 어느 쪽을 선택하겠는가? 선택은 개인의 자유이지만, 밀러 대위의 팀은 후자는 아닌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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