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 게시판] 이 하나의 장면, 영화 속 명장면 철학 읽기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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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8-10
오늘의 씬 : 라이언 일병 구하기(Saving Private Ryan, 1998)
- 감독 : 스티븐 스필버그
- #장면 : 라이언을 구하러 가는 특공대원들의 대화
- 주제 : 인류를 유지하는 힘
(*본 내용은 같은 영화의 여러 장면을 소개할 수 있음)
누구나 한 번쯤 제목은 들어봤을 법한 <라이언 일병 구하기>는 전쟁의 참상을 충격적으로 까발린 노르망디 상륙 씬을 제시한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역작이기도 하다.
“대위님, 질문 있습니다. 왜 8명이 1명을 구하러 가야하는 거죠?”
세 아들의 전사통보를 하루아침에 받게 될 라이언 일병의 어머니를 위해, 군은 마지막 남은 막내아들인 라이언을 구출하기로 결심한다. 특수임무를 수행 중이던 밀러 대위의 특공대팀이 라이언 일병 구출작전에 투입되게 되고, 밀러 대위는 길을 떠나는 중에 레이번의 질문을 받는다.
“누구 답을 아는 사람?”
농담처럼 던지는 말이지만 이는 영화 속의 인물들에게나 관객들에게나 모두 던지는 질문이다. 사지나 다름없는 적진 한가운데 고립된, 살아있는지도 모르는 불확실한 목표를 위해 확실한 8명의 목숨을 거는 일 말이다.
“그놈 엄마를 생각해봐”
레이번의 말에 대답하는 웨이드.
“나도 엄마 있어, 여기 엄마 없는 사람 있어? 대위님도 엄마가 계실걸?"
4명의 전사통보를 받게 될 라이언 일병의 어머니의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겠지만, 사실 레이번의 말에도 딱히 반박할 여지는 없다. 한 사람의 고통이 조금 더 클 것이라고 해서, 다른 사람의 고통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중략)대위님이 저라면 어떻게 생각하겠어요?”
(중략)“이건 정말 멋지고 가치 있는 일입니다. 최선을 다해 충실히 임하겠습니다. 더욱이 라이언 어머니께 위안을 드릴 수 있으니 기꺼이 나와 내 동료의 목숨을 바치겠습니다. 특히 네 목숨 말야 레이번.”
사실 밀러 대위라고 부하들을 사지로 내모는 것이 좋을 리가 없다. 하지만 두 가지 이유에서 그는 이 임무를 수행해야만 한다. 먼저 군인으로써 그 책무를 다하기 위해서다. 군인은 상부의 명령에 복종하는 상명하복의 원칙을 따른다. 하기 싫은 임무라고 해서 피할 수 있다면 군의 근간 자체가 흔들리는 것이다. 누군가는 억지로 하고, 누군가는 하기 싫다고 해서 하지 않을 수 있다면, 형평성이 어긋나게 된다. 여러 사회문제들이 결국 이 문제가 기반이 되는 경우가 있지만, 대부분 이것들이 잘 지켜지고 이를 규제할 법과 강제할 공권력이 존재하기 때문에 사회가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소크라테스의 그 유명한 “악법도 법이다”라는 말은 여기에 기인한다.
웃음 짓는 호바스 상사
두 번째는 앞서 <스워드피시> 편에서 말했던 공리주의의 함정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다. 다수를 위해 하나의 희생이 정당화 된다면, 아이러니하게도 각 개개인은 궁극적으로 개인주의에 함몰되고 만다. 이익이 되는 일이 아니면 나서지 않으며, 또 어떤 행동을 취했을 때 돌아오는 것에 대한 막연한 기대심리도 없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에서의 단체 행동이라는 것은 자신의 안위를 위한 방어적 차원일 뿐, 어떠한 이타심이나 배려를 기대할 수 없다.
그러나 밀러 대위의 일화가 전장에서 고군분투하는 병사들과 그의 가족들에게 전달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자신이 홀로 고립되었어도, 혹은 자신의 가족들이 사지에 내몰렸어도, 구원받을 길이 있다는 믿음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바로 이 믿음이 잔혹한 인류사 속에서도 인류를 유지한 힘이다. 이타적인 사람들에 의한 ‘최악의 상황을 오지 않을 것’이란 믿음은 그 자체로 힘겨운 삶을 이겨내게 만든다. 비록 세 아들을 잃었지만 막내아들이나마 살아 돌아온다면, 라이언의 어머니는 삶을 이어갈 최소한의 이유쯤은 남겨둘 수 있지 않을까?
“마지막 부분은 맘에 들어.”
짙은 죽음의 그림자 속에서 이들이 웃을 수 있는 이유.
이들이 자신의 목숨을 걸 수 있는 이유는 그들의 행동이 종래엔 그들에게 되돌아오기 때문이다. 또 그들 또한 지나간 역사 속에서 초월적인 선택으로 목숨을 바친 사람들에게 빚을 지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적어도 희생으로 이룩된 사회에서 그 덕을 조금이라도 보았다면, 혹은 그 자유를 누렸다면 거기에 대한 자동적인 의무가 생긴다. 설령 의무가 아니더라도 인간은 늘 미래를 살아가므로, 현재 자신의 행동에 대한 책임이 생긴다. 만일 이들이 임무를 회피해도 그 자리를 다른 사람이 해냈다면 이들의 남은 삶이 어떨까. 떳떳한 죽음과 비열한 삶 속에서 어느 쪽을 선택하겠는가? 선택은 개인의 자유이지만, 밀러 대위의 팀은 후자는 아닌 듯하다.